[마하엘 엔데 _ 모모 _ 한미희 옮김 _ 비룡소 _ 소설 _ 청소년 소설 _ 독일 소설]
어린시절에는 모두의 눈이 이 책의 주인공처럼 반짝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의 눈은 꿈을 쫓고 있었고, 밝은 하늘 아래에서도 별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맑은 총기를 지니고 있었다. 아마 나이가 들어 다시 이 책을 발견한다면, 아마도 다시 찾은 별 하나씩을 다시 가슴에 품고 나즈막한 길을 지나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가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어느 날, 작은 마을에 모모라는 소녀가 나타난다. 그 소녀는 초라했지만 맑게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다. 이 소녀에게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는데, 그것은 귀기울여 들을 줄 아는 것이었다. 마을 사람들의 많은 고민거리들이 모모를 통해 해결되었고, 아이들은 어느 때보다 재미있게 놀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모모와 가장 친했던 친구는 젊고 말솜씨가 좋은 기기와 말없는 도로 청소부 베포였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도시에 회색 정장을 입은 신사들이 나타나 사람들로부터 중요한 시간들을 빼앗아가기 시작한다. 회색신사들은 사람들로부터 시간을 빼앗는 그들의 일에 모모가 위협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모를 없애려 한다. 모모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나누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호라박사가 보낸 거북이를 만나 위기를 벗어난다. 거북이와 함께 시간의 근원지에 도착해 호라박사를 만난 모모는 시간의 의미를 깨닫게 된다. 모모는 박사님과의 만남 후 원형극장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모든 것이 변해 있었다. 기기도 베포도 아이들도 모두 회색신사들의 음모에 넘어가 더 이상 원형극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모모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를 들은 회색신사들이 다시 모모에게 접근하지만 모모는 다시 거북이를 만나 호라박사의 집으로 피신한다. 회색신사들이 호라박사의 ‘아무 데도 없는 집’을 포위하고 있는 동안, 모모는 박사님으로부터 회색인들의 비밀을 듣고, 박사를 도와 그들에 맞서기로 결정한다. 모모는 박사가 시간을 멈춘 사이 회색인들의 본거지에 도착하고, 시간의 문을 닫아 그들을 모두 소멸시키는데 성공한다. 시간은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갔고 모모는 베포와 기기, 그리고 많은 친구들과 다시 만나 원형극장에서 행복한 파티를 연다.
모모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마을에는 작은 원형극장이 있다. 시골의 작은 극장이지만 옛날에는 그래도 꽤 사람들이 모였을법한 작은 극장. 지금은 아이들이 공을 차고, 염소를 놓아 풀을 뜯기고, 밤이 되면 사랑하는 연인들이 찾는 곳이다. 극장은 언제가 가장 행복했을까. 영광의 시대에 화려하게 반짝이는 무대를 자랑했던 때와, 지금 중에서. 또는 지금보다는 시간이 훨씬 느리게 가는 것처럼 살았던 옛날의 아이들과, 현재를 사는 아이들 중에서는 어떤 아이들이 더 행복할까. 어른들은 어떨까. 아이들은 놀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을 보면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적어도 나의 어린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놀이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놀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어른들이 놀지 않아서 일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는 동화지만, 우리가 잊어버리고 살았던 많은 부분들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아니, 동화라서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모는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는 일상과 시간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 준다. 그리고 마치 공기처럼 우리가 쉽게 잊고 사는 주위의 사랑스런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해 준다. 만약 모모의 친구인 기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중 하나처럼, 우리가 과거를 잊고 앞에 있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 곁의 누군가가 우리의 모모일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상상만으로도 마음은 붕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다. 좋은 책을 만나 행복을 느끼는 건, 아마도 이런 형식으로 우리의 삶에 생기를 불어넣고 의미를 만들어주기 때문인 것 같다.
예전에 나는 학교 근처로 가는 길에, 좁은 골목길에서 불쑥 나타난 커다란 거북이와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나타날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나타난 거북이는 저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었다. 마치 어떤 계시처럼 느껴질 정도로 비현실적이었지만 분명히 현실이었다. 그 골목은 다행히도 인적이 드물고 사람들이 지나다니지 않는 한적한 곳이었기 때문에 나는 주의깊게 거북이를 볼 수 있었다. 아마 복잡한 번화가의 한 복판, 행인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면 이 이야기 속의 한 장면이었던 모모와 거북이를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우리도 모모처럼, 가끔은 밤하늘 아래 정적에 귀기울여, 아득히 먼 곳에서 나직이 들려오는 음악을 들어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당신과 우리 모두 모모처럼 소중한 존재임을, 모모를 통해 발견하시길 바란다.
[문장수집]
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밤이면, 모모는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머리에 이고 있는 옛 원형극장의 둥근 마당에 혼자 앉아 거대한 정적의 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이곤 했다. 그러면 모모는 별들의 나라를 향해 열려있는 거대한 귓바퀴 한 가운데에 앉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가슴 깊은 곳까지 스며드는, 나직하지만 웅장한 음악을 듣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밤이면 모모는 유난히 예쁜 꿈을 꾸었다. 아직도 귀기울여 듣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모만큼 잘 할 수 있는지 한번 직접 시도해 보길 바란다.
“얘, 모모야. 때론 우리 앞에 아주 긴 도로가 있어. 너무 길어 도저히 해 낼 수 없을 것 같아. 이런 생각이 들지.” 그리고는 한참 동안 묵묵히 앞만 바라보다가 다시 말했다. “그러면 서두르게 되지. 그리고 점점 더 빨리 서두르는 거야. 허리를 펴고 앞을 보면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것 같지. 그러면 더욱 긴장되고 불안한 거야. 나중에는 숨이 턱턱 막혀서 더 이상 비질을 할 수가 없어. 앞에는 여전히 길이 아득하고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안되는거야.” 그러고는 한참 동안 다시 생각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읍, 다음해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거야.” 그러고는 다시 말을 멈추고 한참 동안 생각을 한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면 일을 하는게 즐겁지. 그게 중요한거야. 그러면 일을 잘 해 낼 수 있어. 그래야 하는거야.” 모모의 친구 도로 청소부 베포의 이야기
하지만 모모를 만난 다음부터 기기의 이야기는 갑자기 날개를 얻었다. 특히 모모가 곁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면 그의 환상은 봄날의 풀밭처럼 활짝 피어났다.
의혹을 제기해던 사람은 자기가 고대의 유명한 철학자 노이오지우스가 어느 때 사람인지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사람은 이렇게만 말했다. “아, 그래요. 고맙습니다.”
기기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 우연히 할게 됐지만 확실한 얘기야. 요술 거울을 혼자 들여다본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 존재가 돼. 하지만 둘이서 거울을 보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어. 그런데. 두 사람은 함께 거울을 보았거든.” 커다란 은빛 달이 컴컴한 소나무 위로 떠올라 폐허의 돌무더기에 신비스러운 빛을 쏟아 부었다. 모모와 기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란히 앉아 달을 올려다보았다. 두 사람은 그 순간이 지속되는 한 자신들이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임을 또렷이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을 재기 위해서 달력과 시계가 있지만, 그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사실 누구나 잘 알고 있듯이 한 시간은 한없이 계속되는 영겁과 같을 수도 있고, 한 순간의 찰나와 같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한 시간 동안 우리가 무슨 일을 겪는 가에 달려 있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이니까.
그랬기에 그들은 축제도 제대로 즐길 수 없었다. 즐거운 축제도 그랬고, 엄숙한 축제도 그랬다. 꿈을 꾸는 것은 죄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 것, 그것은 정적이었다. 사방이 고요하면, 그들은 자기네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고, 그러면 밀물처럼 불안이 밀려왔다. 그래서 그들은 정적이 찾아올 기미만 보이면 요란하게 소란을 떨었다.
하지만,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들은 우리들의 천적이에요. 아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벌써 오래 전에 인류를 손에 넣을 수 있었을 겁니다. 아이들에게는, 그 어떤 사람보다도 시간을 아끼게 하기가 힘이 들어요.
음, 이 세상의 운행에는 이따금 특별한 순간들이 있단다. 그 순간이 오면, 저 하늘 가장 먼 곳에 있는 별까지 이 세상 모든 사물과 존재들이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서로 영향을 미쳐서, 이제껏 일어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일어날 수 없는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지. 애석하게도 인간들은 대개 그 순간을 이용할 줄 몰라. 그래서 운명의 시간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 버릴 때가 많단다. 허나 그 시간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으면 아주 위대한 일이 이 세상에 벌어지지.
죽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가기 때문이지. 너도 알다시피 그들은 인간의 일생을 먹고 살아 간단다. 허나 진짜 주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시간은 말 그대로 죽은 시간이 되는 게야.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자신의 시간을 가지고 있거든. 시간은 진짜 주인의 시간일때만 살아있지.
그들은 사람들이 생겨날 기회를 주면 생겨난단다. 기회만 주어지면, 금세 생겨나는게야.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그들에게 자기들을 좌지우지할 기회까지 주고 있어. 만약 시간을 더 이상 훔칠 수 없게 되면 그들은 그들이 태어난 무無로 돌아가야 하지.
아니야, 모모. 이 시계들은 그저 취미로 모은 것들이야. 이 시계들은 사람들이 저마다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엉성하게 모사한 것들에 지나지 않아.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가지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장님에게 무지개의 고운 빛깔이 보이지 않고, 귀머거리에게 아름다운 새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과 같지.
죽음이 뭐라는 걸 알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게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아무도 사람들의 인생을 훔칠 수 없지.
시간의 꽃을 기억하고 있겠지? 그 때 내가 말했잖니.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을 갖고 있기에 그런 황금빛 시간의 사원을 하나씩 갖고 있다고 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 사원에 회색 신사들을 들이게 되면, 회색인들은 시간의 꽃을 야금야금 빼앗을 수 있게 된단다.
처음에는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해. 허나 어느 날 갑자기 아무것도 하고 싶은 의욕이 없어지지. 어떤 것에도 흥미를 느낄 수 없지. 한 마디로 몹시 지루한 게야. 허나 이런 증상은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커지게 마련이란다. 하루하루, 한 주일 한 주일이 지나면서 점점 악화되는 게지. 그러면 그 사람은 차츰 기분이 언짢아지고, 가슴 속이 텅 빈 것 같고, 스스로와 이 세상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된단다. 그 다음에는 그런 감정마저 서서히 사라져 결국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게 되지. 무관심해지고, 잿빛이 되는게야. 온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고, 자기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것 같아지는 게지. 이제 그 사람은 화도 내지 않고, 뜨겁게 열광하는 법도 없어. 기뻐하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아. 웃음과 눈물을 잊는게야. 그러면 그 사람은 차디차게 변해서, 그 어떤 것도, 그 어떤 사람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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