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키 키린 _ 키키 키린 _ 현선 옮김 _ 항해 _ 에세이 _ 일본 에세이]
이 책은 일본의 배우 키키 키린이 생전에 다양한 인터뷰에서 남긴 메시지들이 담긴 책이다. 그녀는 2018년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생로병사와 같은 보편적 주제에 대해 많은 말들을 남겼다. 그녀는 고정관념이나 상식에 얽매이지 않고 삶에서 재미를 찾았으며, 어떤 어려움도 삶의 자양분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녀의 글들은 담담하고, 차분하며, 재미있고, 조용하고, 하찮은 것 같기도 하지만, 힘이 있으며, 이내 따듯해졌다가 차가와지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자기 자신을 멀리서 관찰하는 것처럼 뭔가에 얽매이지 않고 태연하거나, 느긋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어쩌면 이 책은 다양한 영화에서 보던 그녀의 이미지와도 닮아 있는 것 같다. 옮긴이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세상만사를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너무 노력하지도 너무 움츠러들지도 않고 유쾌하게 살다가 갔다고 한다.
인생을 초월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많은 책들이 있다. 좋은 글들이지만 각박한 현실속에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읽는 순간만은 마음이 차분해지고 조금 더 잘 살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유독 배운 것들을 금세 잊어버리는 내가 비슷한 느낌의 비슷한 책들을 자주 찾아 읽는 이유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을 것 같았던 우리의 일상에 갑자기 무슨 일인가가 일어나면 우리가 삶을 보는 관점들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다. 긍정적인 측면이라면 오히려 현재에 충실할 수 있게 해 주고, 현실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는 것이다. 부지런하게 집단에 피해를 끼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은 이타적인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글들이 길지 않고, 짧은 글들 속에 꼭 필요한 것들만 경제적으로 녹아있는 느낌이라 읽기에 아주 편한 책이다. 책의 사이즈도 그녀의 몸집처럼, 또는 그녀가 남긴 글처럼 작아서, 나를 돌아보기 위한 짧은 여행에도 어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책을 곁에 두고 화장실에서 많은 페이지들을 읽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떠난 짧은 여행에선, 좀 하찮게 사는 건 괜찮지만, 막 살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다. 모두 건강하길 바란다.
[문장수집]
이쪽에서 먼저 ‘저 사람 참 괜찮네’ 하고 생각하면 어느덧 상대도 나에게 좋은 걸 줍니다.
나는 만사에 ‘꼭 이래야만 한다’는 법은 없다고 봐요. 예를 들어 내 얼굴을 보세요. 이건 실수에 의한 작품이라고요(웃음), 그래도 나는 실수를 만회해보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그런데 나는 누구랑 같이 있으니 외롭지 않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혼자 있든, 둘이 있든, 아니 열 명이 같이 있어도 외로울 땐 외로운 거죠.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사람이 뭔가를 품는 데는 한계가 있어서, 그것보다 더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어요.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되면, 거기에 걸맞은 인연이 찾아오기 마련이에요.
내 판단을 넘어서는 존재를 거부하지도, 빠져서 허우적대지도 않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있고 싶네요. 나는 그렇게 강하지도 약하지도 위대하지도 쓸모없지도 않으니까요.
평범한 일상을 보내지 않으면 삶 속에서 성장하기 어렵습니다.
부디 세상만사를 재미있게 받아들이고, 유쾌하게 사시길, 너무 노력하지도 너무 움츠러들지도 말고요.
부부의 연을 맺은 이상, 상대의 단점이 내 안에도 있다는 걸 알아야합니다. 저는 때때로 남편이나 부인에 대해 나쁘게 말하는 사람을 보면 ‘이 사람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네’ 하고 생각한답니다.
돈도 지위도 명성도 없어 남의 눈에 수수하고 따분한 인생처럼 보일지라도 자기가 정말 원하는 걸 하면서 행복하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반짝반짝 윤이 날 겁니다.
‘이럴 리가 없어’라는 마음은, 현실이 목표로 삼은 것 혹은 상상했던 행복과 달라서 생기는 감정입니다. 그럼 마음이 생길 때는 그 목표가 정말 자기가 원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주입받은 결과이거나 남과의 비교에서 생긴 감정인지 직시해보세요.
내 존재로서 타인과 세상을 더 즐겁게 만드는 일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럴 기회는 꼭 찾아옵니다.
“여보, 비뚤어지는 것도 엄청 어려운 일이라고, 무지 힘이 들어. 게다가 그 상태로 계속 있는 건 더 힘든 거라고.”
사람이란 애초에 그렇게 올바르지 않아요.
젊을 때는 역시 욕심이 좀 있을 수밖에 없죠. 하고 싶은 것도 많고요. 그래서 뭔가를 만들어내가도 하는 거겠죠.
이런 상황을 만든 그 사람에게 감사합니다. 그렇게 무책임한 사람이 이혼서류를 냈다는 건, 하나의 진보라고 생각해요. 유야 씨가 자기가 사는 방식이나 일을 분명하게 하고 싶어서 그렇게까지 했겠죠. 저는 그 점을 높게 삽니다.
예술인들은 찬사와 비난을 받으면서 시대 속에서 살아남아야 그 사람의 가치가 생겨나는 겁니다. 그러니까 드러내놓고 ‘나 가치있지?’ 하라고요.
사람에게도 제자리가 있어서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에 따라 그가 살아보이기도, 죽어 보이기도 합니다.
이제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겠네요. 지금까지, 만족스러운 인생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물러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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