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나 _ 나를 숨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 _ 위즈덤하우스 _ 에세이 _ 한국에세이 _ 작가 작사가]
글을 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연속해서 읽고 씀으로써 조금씩 더 높고 깊은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 과정에서 원래 알고 있던 단어와 조합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 또는 새로운 쓰임과 뜻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런 경험들은 신기하지만 어떤 때에는 낯선 단어들로 이루어진 우주에 버려져 표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우주로 떠올려지기 전에는 글자들이 자음과 모음으로 분리되어 책 위로 떠오르기도 한다. 이때부터 이미 나는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글의 바다에서 길을 잃은 것이다.
나는 내 주변의 여러 현상들의 이유를 알게 되거나 그 현상의 원인이 조금이라도 뚜렷해지면 마음속의 불안함이 가라앉는 느낌이 든다. 사람과 삶에 대한 통찰력있는 글과 말을 만날 때 그런 느낌은 짙어 진다. 김이나 작가의 글은 나에게 그런 느낌을 준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마주치는 다양한 감정들을 주제별로 분류해서 각각의 서랍에 넣어주는 느낌이랄까? 거기에다 필요할 때 다시 찾아볼 수 있도록 친절한 인덱스도 붙여준다. 확실히 나는 이런 느낌을 받으면 안정되는 타입이다. 그리고 작가가 드러내기 어려운 개인적인 감정들을 드러내는 부분에서는 더욱 그렇다. 아, 작가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구나. 혼자 있을 때 하염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시는구나. 그것도 여러 번.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이번 책을 읽어 내려갔다.
특히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직업을 가진 작가님의 창작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은 두고두고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이 많았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무심코 쓰는 언어들도 사실은 누군가 만들어낸 창작물 들이다. 살면서 이렇게 몰랐던 것들을 알게 되는 건 신기하고 즐거운 일이다. 이런 즐거움을 주신 김이나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욕심만 부리고 자책을 반복하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데만 익숙한 나는,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하나하나 모아 이렇게 긴 흐름의 글로 엮어낸 그녀의 재능이 부럽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단어와 음악과 그림들과 씨름하고 있는 모든 창작자들에게 행운이 깃들길 빌며, 책 마지막에 수록된 김하나님의 인상적인 추천사로 글을 마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비로소 보통의 언어들이 지닌 힘을 깨닫는다. 관계의 어긋난 ‘시차’를, ‘이해가 안 간다’는 말이 품은 공격성을, ‘찬란하다’의 미묘한 음절을, ‘분노’와 ‘용기’가 지는 비슷한 방향성과 차이를 짚어내는 이 시선은 지적이면서도 다정하다. - 말을 쓰고 다루는 방식은 결국 삶을 사는 방식과도 닮아 있어, 나는 책을 덮으며 이 섬세하고 솔직한 사람이 진심으로 좋아졌다. -김하나(에세이스트)-
[문장수집]
감정이 원형 그대로 전달될 수 있으려면, 글자로는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때로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같은 언어를 서로 미세하게 다르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소통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느끼는 감정에 가장 가까운 언어를 골라서 소통하고 있다. 수의 법칙을 이해하기 전에 구구단을 멜로디로 외운 다음 법칙을 이해하듯, 우리는 어느새 너무 당연해진 언어를 통해 관성적으로 대화하고, 사고한다.
언어를 통해 세상을 보고, 언어를 통해 누군가를 이해하고 나의 마음을 전달하지만 정작 언어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것에는 소홀하니, 마음이 통하는 대화라는 것은 그토록 귀하다.
‘만물이 존재하고 있는 그 형태가 쪼개어 들어가보면 물질이기도 하고 파동이기도 하다.’라는 것이 과학에 대해서 굉장히 지식이 없는 저에게 너무 흥미로웠어요. “아, 우리의 존재라는 것이 어쩌면 파동이겠구나.” 그래서 누군가가 누군가와 통한다는 것을 “쟤랑 나랑은 코드가 맞아, 주파수가 맞아.”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관계라는 것은 파동의 만남이고 그 파동이 서로 박자를 맞추어 가는 것이, 우리가 한 사람과 긴 길을 오랫동안 걷고 싶어하는 것과 같은 그런 모양이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하는 마음과 좋아하는 마음에 부등호를 붙일 생각은 없다. 이 둘은 맞닿아 있는 듯 완벽하게 다른 세계를 빚어내는 감정이며 그저 ‘좋아한다’는 마음이 얼마나 우리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지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아니 우리는 모두, 사회성이란 것을 갖추게 되었고 그것은 아주 가깝지 않은 누군가에게 ‘달’처럼 존재할 줄 아는 능력을 포함한다.
나는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는 말은 완벽히 상대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관계를 단절하고 나 하나만 놓고 보자면, 나는 완벽하다. 잘난 부분 딱 그 만큼의 못난 부분을 갖춘, 완벽한 밸런스를 갖춘 사람이다. 비틀어진 부분이 있고, 그래서 나오는 독특한 시각과 표현력이 있다. 모나게 튀어나온 못된 심술도 있고, 그 반대편엔 튀어나온 만큼 쑥 패여서 무언가를 담아내는 포용력이 있다. 대부분의 장점과 단점은 이렇게 서로 등를 지는 형태라 떼어놓고는 말할 수가 없다. 예민함과 섬세함, 둔함과 털털함처럼.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고유의 모양으로 존재하는데, 타인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그렇다.
대신 생긴대로 살아가다 거름망에 걸러지는 내 사람들은 사금처럼 귀하다.
공감에 대한 나의 오류는 ‘쓰는 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했다는 데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기 위해선, 덜 구체적이고 넓은 테두리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착각. 이를테면 이상형을 따질 때 ‘짝눈, 깨끗한 피부, 예쁜 손가락, 야무진 입매’ 등등을 열거하기보다 ‘눈코입이 달린 사람’이라고 쓰는 게 더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맥락으로 여긴 것이다.
그러나 내가 배운 건, 공감은 오히려 디테일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공감은 기억이 아닌 감정에서 나온다. 즉 상황의 싱크로율이 같이 않더라도, 심지어 전혀 겪지 않은 일이라 해도 디테일한 설명이 사람들의 내밀한 기억을 자극해 같은 종류의 감정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공감을 사는 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이 목구멍에 걸릴 때, 한 번쯤은 삼키고 생각해보려 한다. 이것이 물음표, 즉 의아함인지 아니면 비난의 느낌표인지. 그리고 내게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상황이 내가 서 있는 위치, 다시 말해 나의 관점 때문은 아닌지.
그러나 문제는,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내가 하염없이 작아지는 밤에 일어난다.
누가 굳이 뭐라 하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혐오의 순간을 겪는다.
소중한 것은 글자가 뜻하는 것처럼 힘을 들여 지켜야 하는 것임에도, 우리는 종종 말로만 그것을 소중하다 칭한 채, 방치한다. 그래서인지 가사 속에서 ‘소중하다’는 말은 주로 과거형으로 쓰이는 겨우가 많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말 같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소중한 것들은 그것이 유한하기에 그렇다. 꽃을 보고 드는 반가운 마음은 이것이 곧 시들 것을 알기 때문이고, 청춘을 예찬하는 이유도 쏜살처럼 빨리 사라져버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망각과 적응의 동물이기에 이 유한성을 잊는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떠나기에, 하루하루는 소중하다. 이처럼 우리는 매일같이 이별에 가까와지고 있다.
나는 가끔 세상의 모든 형용사들이 가진 기가 막힌 표현력에 감탄하게 되는데, 이는 주로 발음에서 온다. ‘반~짝’하고 말할 때 ㄴ받침을 부드럽게 도움닫기 삼아 ‘짝’하고 내뱉는 발음은 무언가에 빛이 닿아서 튕겨나오는 모습 그 자체인 것 같고, 찬란하다는 말의 실제 발음인 ‘찰~란’은 ‘찰’의 받침 ㄹ과 ‘란’의 자음 ㄹ이 파도 능선처럼 이어지는 기분이 들어 앞서 비유했던 것처럼 햇살이 닿은 물결의 느낌인 것이다. 게다가 ‘차-‘하면서 시작되는 첫 음절은 퍼져나가는 빛이 혀에서 구현되는 착각이 들지 않는가.
‘슬프다’라는 말이 유난히 그렇다. 나는 이슬이 맺혀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말로 둔갑해서 ‘슬프다’가 되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이 말이 가진 발음 특성이 감정을 기가 막히게 잘 그려냈다고 생각한다. 이게 창작자의 의도와 전혀 다를지언정, 이런 식으로 단어를 대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가슴에 묻는다’,’가슴에 품는다’ 모두 마음의 풍경이지만 묻고 가는 것은 주로 아픔이고 품고 가는 것은 연정의 속성을 띈다. 이후의 이야기는 어떻게 떠오르는가. 나는 묻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려는 모습이, 품는 것은 무언가가 내 삶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떠오른다.
사랑과 행복은 비처럼 내려오는 감정들이다. 나의 의지로써가 아니라 누군가 갑자기 연 커튼 너머 햇살처럼 쏟아져 내린다.
유난스럽다고 지적받은 부분이 있다면 그 부분이 바로 당신을 빛나게 해줄 무언가일 것이다.
모두에게, 모든 곳에서 온전한 나로서남 존재한다는 건 아주 이기적이어야 가능하다. 배려하기에, 사랑하기에, 책임이 있기에, 히스토리가 있기에 우리는 종종 다른 모습을 한다.
중요한 건, 빛나는 재능만으로 할 수 없는 게 ‘살아남기’라는 것이다. 금 밖을 나가면 게임이 끝나는 동그라미 안에서 변두리로 밀려나 휘청거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고, 아마 앞으로도 몇 번은 올 것이다. 그때 볼품없이 두 팔을 휘저어가며 다시 균형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 그 멋없는 순간 스스로 겸연쩍어 선 밖으로 나가떨어진다면 잠깐은 폼날지언정 더이상 플레이어가 될 순 없다.
어렴풋이 품고 있는 생각을 누군가 구체적으로 말해줄 때 오는 쾌감이 있다.
존엄이라는 말의 무게 때문에 창씨개명에 맞서고 인권운동에 삶을 바치는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 같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존엄한 사람들은 일상 속 하찮은 순간들이 정갈한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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