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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공간이 만든 공간] 책 리뷰

by ianw 2024.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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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준 _ 공간이 만든 공간 _ 을유문화사 _ 인문 _ 인문교양 _ 건축]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억지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하기 싫어 진다. 좋은 책은 공부를 재미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뿌듯함, 공들여서 만들어진 한 권의 책을 다 읽었다는 지적 포만감은 답답한 일상에서 우리를 구원해주는 힘 중 하나다.

 

공간이 만든 공간 책


우리는 보통 제목이나 서평, 집필한 작가를 보면서 책의 내용에 대해 예상하고 책을 고르게 된다. 이번에 나는 이랬다. 자, 어디 한 번 보자. 책을 쓴 분이 유현준 작가님? 음, TV에서 본 사람이군. 건축을 한다고 하던데, 말은 재미있고 조리있게 했던 기억이 있어. 어디, 책 제목이, 음, 공간이 만든 공간? 흥미로운 제목이군. 그래, 맞아. 요즘 이런 류의 책을 읽는데 좀 소홀했지. 시기적절한 책이 되어줄 것 같다. 그래, 이 책을 보자.

 

공간이 만든 공간 책


우리가 책을 고르는 건 분명히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지만, 어떤 때에는 마치 오래 전에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만나게 되는 책들도 분명히 있다. 더구나 나는 삶에 있어서 우연이나 운명의 강력함을 믿는 쪽이기 때문에 더 그렇게 느끼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행되어야 할 요소들은 분명히 있다. 그건 우리가 먼저,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다.

 

공간이 만든 공간 책


움직인다는 것은 이 책의 내용과 관련이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내용은 책의 부제와 같이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이다. 이게 핵심이고, 이 주제를 따르는 역사적 배경들과 한 시대를 풍미한 건축가들의 이야기가 뒤를 따른다. 작가의 주장에 의하면 새로운 생각은 그 자리에 머무르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쪽으로든, 어떻게든 움직인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움직임에 의해 서로 다른 생각들이 융합되고 그 결과로 생각의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공간이 만든 공간 책


문명의 시작으로부터 출발해서, 환경과 기후에 따라 달라지는 건축방식, 동서양을 넘나들며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의 이동을 쫓는 작가의 여정은 아주 흥미롭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건축가들은 작가의 생각에 대한 증거다. 미스 반 데어 로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 꼬르뷔지에, 루이스 칸, 안도 다다오 등 많은 건축가들과 그들이 작품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의 행보는 전반부에서 소개한 작가의 주장과 일치한다. 유현준 작가님은 마치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처럼, 책을 쓰기 전에 미리 치밀하게 작업도면을 그려 놓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정돈된 관찰력과 통찰력을 선보인다. 

 

공간이 만든 공간 책


책 전반을 흐르는 큰 주제에 꼭 집중하지 않아도, 각각 개별의 위대한 건축가들을 쫓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재미도 있고 자연스럽게 공부도 되는 책이다. 다만 부작용(?)이 하나 있는데, 이렇게 책을 통해서 뛰어난 사람들을 만나고 작가의 좋은 생각들을 접하다 보면 내 작업을 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뭔가 모습을 감추고 있던 열정이 살아 난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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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나는 작업을 하다가 이내 다른 곳을 둘러보고, 돌아 다시 왔다가는 이내 또 흥미가 생긴 다른 곳에 가 보곤 한다. 산만하지만 내가 살아가는 공간을 스스로 넓히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이 글을 보는 분들도, 당신들만의 것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가는 기회를 만나게 되길 바란다. 항상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그 편이 훨씬 즐거울 테니까.

 

공간이 만든 공간 책

 

 

 

 


[문장수집]


이들의 공통점은 시대가 주는 문제를 발견하고 새로운 시각과 생각으로 해결책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열역한 제2법칙인 ‘엔트로피’에 의하면 모든 쓸모있는 에너지는 온도의 차이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온도 차가 없으면 에너지가 없다. 에너지가 없으면 창조와 생명도 불가능하다. 과학자들은 수백억년이 지나고 나면 우주가 전체적으로 같은 온도의 차가운 상태가 되고, 그러면 시간도 멈출 것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시간은 무질서의 정도를 말하는 엔트로피가 늘어나면서 부수적으로 만들어지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창조는 온도 차에 의해서 시작된다. 

벼 농사 지역의 사람들은 집단의식이 강하고, 밀 농사 지역은 개인주의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문화적 특징의 차이는 알파벳과 한자 같은 문자나, 체스와 바둑 같은 게임 문화에서도 나타난다. 

잉여농산물은 사회계층을 만들었고, 나누어진 사회계층은 잉여시간을 만들었으며, 잉여 시간은 문화를 만들었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충돌하고 융합하려면 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여 살아야 한다. 도시는 그런 환경을 제공해 준다. -도시는 창조의 플랫폼이었다. 

문화의 진화과정은 생명체의 진화과정과 동일하다.

모더니즘이란, 기술에 의해서 만들어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문화 전반에 걸친 새로운 변혁을 말한다.

우주의 불변의 법칙 중 하나는 만물의 무질서는 증가한다는 엔트로피 법칙이다.-문화는 방대한 에너지의 흐름 과정 중에 잠깐 동안만 만들어지는 질서라는 ‘저엔트로피’의 상태이다.

어떤 존재가 사물을 인지할 때는 자신보다 낮은 차원의 것만 완전히 인지할 수 있다. 이 명제에 대한 설명은 미치오 가쿠의 저서 ‘초공간’에서 쉽게 설명하고 있다. - 동그라미, 네모, 세모 이들 2차원 도형들이 의식이 있다고 가정하고 서로를 바라보면 이들은 서로를 똑같은 직선으로 보게 된다. 

빛을 느끼기 위해 그림자가 필요하듯, 빈 공간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물체가 필요하다. 역으로 추론해보면, 물체가 만들어지면 동시에 빈 공간도 부산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건축행위는 일차적으로는 물체를 만드는 것이지만, 최종 목적은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벼농사를 짓는 지역의 사람들은 ‘철길 위를 달리는 기차’를 생각하면서 개체 간의 ‘관계’에 집중해 기차와 철길을 하나로 묶었고, 밀 농사를 짓는 지역에서는 관계가 아닌 각 개체가 가진 성질의 공통점을 찾아서 교통수단이라는 범주에 속하는 ‘버스와 기차’를 하나로 묶은 것이다. / 66p

강수량의 차이는 농업 품종의 차이를 만들고, 품종의 차이는 농사 방식의 차이를 만들고, 농사 방식의 차이는 가치관의 차이를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건축에서 동서양의 강수량 차이는 건축디자인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발전시켰고, 건축 공간은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지구는 둥그런 구 형태이기 때문에 땅에 그려진 삼각형도 사실은 완전한 직선의 삼각형이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각의 합이 180도인 삼각형을 우리의 머릿속에서 상상하여 인식한다. -이러한 수학적 개념은 다분히 현실 세상에서는 실존하지 않는 완전성이다. 이러한 수학의 완전성은 이데아의 개념적 완전성과 일맥상통한다. / 87p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는 둘 다 절대적인 진리의 세계가 있는 것으로 보는 공통점이 있다. 때문에 그 둘을 바탕으로 한 서양의 사고방식에는 절대 진리의 세계가 있으며, 그 곳에 이르는 길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길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개념이 깔려 있다. 이 같은 사고 방식이 있었기에 수학이 서양문화에서 큰 영향력을 갖는 학문으로 위치할 수 있었고, 그 토대 위에 과학혁명이 가능했던 것이다. / 94p

피타고라스와 그의 학파는 현악기에 있는 줄의 길이와 음정의 관계를 처음으로 연구했는데, 그 이유는 만물의 아름다움에 수학적 해석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수학이 아름다움을 만든다는 믿음이 시각적으로 적용이 된 것이 ‘황금비율’이다. /  94p

진흙을 이겨서 질그릇을 만든다. 그러나 그 내면에 아무것도 없는 빈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릇으로서의 구실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노자. 도덕경.11장. / 101p

패러다임이란 한 시대의 인간 사고를 지배하는 인식 체계라 할 수 있다.

알파벳의 구성 역시 전통적인 원자 개념과 비슷하다. 더 이상 쪼개질 수 없는 26개의 알파벳이 일정한 순서로 붙어서 문장을 구성하는 체계다. - 한자에서 글자의 뜻은 한 글자를 구성하는 기본 글자의 상호관계에 의해서 변화된다. 알파벳의 경우 모든 글자가 한 방향으로 나열되는 반면, 한자는 글자가 상하좌우 어느 쪽으로도 덧붙을 수 있는 여러가지 방향성을 가진다는 점이다. / 110p

바둑의 법칙에서 중요한 점은 상대방 돌을 많이 가진 편이 이기는 것이 아니라, 빈(보이드) 공간을 많이 만드는 편이 이기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 112p

체스에서는 말이 격자형으로 만들어진 네모 안에 위치하지만, 바둑에서는 돌이 격자 선의 교차점에 놓인다. 일반적으로 서양 건축은 육중한 벽이 공간을 구획하고 있는 벽 중심의 건축이고, 동양 건축은 기둥 중심의 건축이다. / 120p

서양의 공간은 다분히 수학적인 분석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반면, 동양의 공간은 비어 있다는 뜻의 한자’공’과 사이라는 뜻의 한자 ‘간’이 합성된 단어다. ‘사이’라는 것은 두 개의 개체가 있어야만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간’은 둘 사이의 관계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동양에서 공간이라는 단어는 ‘비움’과 ‘관계’의 합성어로 만들어진 것이다. / 124p

삼각형을 설명하려면 세 점의 위치라는 세 가지 정보가 필요하지만 원은 하나의 점과 반지름 길이라는 두 가지 정보만 있으면 정의 내릴 수 있다. 원은 여러 기하학 도형 중에서 가장 단순한 정의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완전함과 근원의 상징으로 원이 사용된다. / 128p

같은 형태의 돔을 다른 크기의 규모로 변형 후 반복해서 사용하는 방식은 수학의 프랙털fracgtal 이론과 유사하다. 프랙털은 단순한 규칙을 가지고서 복잡한 모양을 만드는 ‘차원 분열 방법’으로, 자연의 불규칙한 현상을 해명하는 카오스 이론의 설명에 이용된다. 예를 들어서 고사리 잎의 모양은 같은 모양이 스케일만 줄어들면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형태를 띄고 있다.  /132p

따라서 동양의 빈 공간은 규정되어 있기보다는 유동적이며 내외부를 관통해서 흐르는 듯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강수량은 농사의 주요 품종을 결정하고 농사법은 사람의 가치관과 생각을 형성했다. 또한 강수량은 건축 재료를 결정했고, 그에 따라서 건축 공간의 성격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건축 공간은 사람의 성격에도 영향을 미쳤고, 반대로 생각은 건축 공간의 디자인을 결정하기도 했다. 결국 자연환경이라는 부모는 사람의 생각과 건축 공간이라는 두 명의 자식을 낳았는데, 생각과 건축 공간은 같은 부모 아래에서 태어난 자녀처럼 공통된 성격이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상호 영향을 미친다. / 145p

서로 반대되는 음과 양을 병치해서 조화를 이루게 한다는 것은 도교 사상의 핵심이다. / 161p

픽처레스크 스타일은 일인칭 개인적 경험과 인식을 중요시한 디자인 방식이다. -서양 정원 디자인에서 상대적 관계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픽처레스크 정원 디자인은 서양 문화에 있어서 경직된 기하학에서 탈피하여 상대성에 가치를 두는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점이 된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 191p

칸트는 1781년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세상과 자아를 분리하는 이원론적인 서양철학의 관점에서 세상과 자아를 하나로 보는 일원론적인 시각으로써의 관점 전환을 보여주는 책으로 평가받는다. 다른 말로 세상 위에 분리되어서 내가 존재하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는 전지적 시점이 아니라 나에게 세상이 어떻게 보이는가에 중심을 둔 것이다. 이는 다분히 일인칭 시점을 통해서 세상과 나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시각이다. 이 같은 칸트의 생각은 픽처레스크 양식과 생각의 궤가 같다고 할 수 있다. / 192p

당시 유럽의 생각의 패러다임은 지난 3백년 동안 꾸준하게 동양과의 문화적 교류를 통해 새로운 변종의 사상이 서서히 싹튼 것으로 보인다. 이는 동양이 서양보다 낫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외부의 색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문화권이 새로운 변종을 만들어 내게 되고, 그것이 시간이 지나면 시대를 이끄는 매력적인 문화가 된다는 것이다. / 192p

반 고흐가 일본 유키요에 민화의 색채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면 서양화에 빈 공간의 새로운 가치를 도입한 사람은 피에트 몬드리안, 테오 판 두스뷔르흐, 호안 미로 였다. 신조형주의라고 불리기도 하는 데 스테일 그룹의 대변인으로 활동했던 두스뷔르흐는 이차원적인 그림이 어떻게 삼차원 공간적 의미로 변화될 수 있는가를 보여줬던 인물이다.-훗날 근대 건축가 미스 반 데어로에의 벽돌시골집에 많은 영감을 준 것으로 보인다. / 193p

콜더의 작품 모빌은 서양미술사에서 4차원의 시간이라는 주제를 3차원의 조각에 도입한 점만으로도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시간성 뿐 아니라 서양 조각에 이전까지는 없었던 관계성을 주제로 한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 194p

콜더가 조각으로 비움과 관계라는 동양의 가치를 보여주었다면 파울 클레는 회화를 통해 동양 건축에서 보이는 모호한 경계의 공간감을 보여준다. / 198p

나는 건축이라는 같은 속에 속한 다른 종의 동서양 건축이 동서양 간의 무역을 통해서 문화 유전자를 교환하고 새로운 종을 만들어 낸 것이 근대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 207p

15세기에 삼각돛을 단 범선의 등장으로 공간이 더 압축되면서 유라시아 대륙의 양 극단에 위치했던 서양과 동양의 문화가 유전적으로 섞이기 시작했다. 16세기 중국산 도자기가 유럽에 대량으로 수입되었고, 17세기에는 동양 철학 책들이 유럽에서 번역되어 출판되었고, 18세기에는 조경 디자인이 바뀌었고, 19세기에는 이 변화가 미술로 전파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서는 건축에서 문화적 이종 교배의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 208p

이 계단실 안에서 방문객은 콘크리트 벽체들에 둘러싸여서 주변 경관과 완전히 분리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는 다음 번 극적인 장면의 순간으로 들어가기 전 ‘시각적 정적’의 순간이다. 이 순간 오직 콘크리트로 프레임된 공간과 그 자신만이 있을 뿐이다. / 303p

일본이 이런 디자인을 하는 이유는 권터 니츠케의 ‘시간이 돈이고, 공간이 돈’이라는 글에서 잘 설명되어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미국과 같이 공간이 넘쳐 나는 지역에서는 시간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 거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고 한다. -이와 반대로 일본 같은 섬 나라에서는 공간이 부족하고 시간은 오히려 남는다. 이런 경우에는 공간을 극대화 하기 위해서 시간을 지연시키는 쪽으로 건축이 발전해 왔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같은 면적의 공간이라도 이동 시간을 늘리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하면 많은 기억이 남게 되고, 따라서 공간이 더 넓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 310p

이 같은 장치는 전이 공간을 지나면서 방문객으로 하여금 방향 감각을 잃어버리게 하여 심리적으로 공간을 더 넓게 인식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 동시에, 주 공간에 들어가기 전에 다양한 장면들을 연출해서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 312p

안도 다다오의 건축은 오브제를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그의 건축의 자연과 건축의 입체적 구상을 만드는 데 초점을 둔다. 그러기 위해서 안도는 그의 건축물의 내외부에 복잡한 경로를 만들어 놓는다. 이 복잡한 경로를 따라 걸으면서 방문객들은 자연과 건축의 다양한 관계를 보여 주는 다양한 장면을 감상하게 된다. / 326p

영국의 픽처레스크 조경 디자인과 안도의 건축 디자인은 같은 전통 동양 문화 유전자를 공유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비슷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픽처레스크와 안도는 건축 분야의 뮐러 의태다. / 327p

포스트 모더니즘, 후기 모더니즘은 각 분야에서 다르게 해석된다. 예를 들어서 영화나 소설에서는 기존의 이야기 틀을 깨는 것을 말한다.-과거로 가서 현재를 바꾸기도 하는 이야기 전개를 말한다. 또 다른 특징은 관객과 배우 간의 무언의 계약을 깨뜨리는 것이다.-그런데 다른 장르와는 다르게 건축에서의 포스트 모더니즘은 현대식 건축물을 만들 때 고전 건축물을 흉내내서 디자인하는 현상을 말한다. / 335p

20세기까지는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력을 컴퓨터로 표현하는 시대였다면 21세기 들어서는 컴퓨터의 상상력을 빌리려는 노력이 진행중이다. 그런 시도를 파라메트릭 parametric 건축이라고 부른다.-파라메트릭 디자인 프로세스 중에서 컴퓨터에 의해  연산되는 과정에는 알고리즘이라고 하는 수학적인 개념이 접목되는데, 이 알고리즘을 기계공학자들이 만든 알고리즘을 사용하느냐, 유전공학자들이 개발한 알고리즘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다른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 348p

문화인류학적으로 한 언어를 사용하는 문화권은 서로 비슷한 생각과 공감대를 공유하게 되는데, 이와 유사하게 컴퓨터 언어, 즉 같은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디자이너들의 생각과 결과물들은 서로 비슷하게 나올 수 밖에 없다. -기술에만 의존하는 창조는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성이 사라진다. 우리는 그런 현상을 20세기 중반 국제주의 양식에서 경험했다. 기술이 이끄는 획일화를 어떠한 방식으로 피하느냐가 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다. / 356p

그런데, 19세기 말이 되자 문제가 생겼다. 인간은 계속 무언가를 탐험할 곳이 필요한데, 사실 당시의 교통수단으로 갈 만한 곳은 다 가 버려서 갈 곳이 없어졌다. 탐험할 ‘공간’이 필요했던 인간의 눈은 두 방향으로 향했다. 하나는 ‘안쪽’으로 하나는 ‘바깥쪽’으로. 안쪽으로 향한 것이 인간의 마음을 연구하는 심리학의 발전이다. 1856년 오스트리아 태생의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필두로 하여 인간의 내면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무의식의 세상’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20세기에 교통수단이 조금 더 발달하자 우리는 우주로 향했다. / 367p

지리적인 발견이 더 이상 불가능한 시대가 되자 인간을 새로운 대륙을 만들었다. 새로운 대륙은 현실 속 공간이 아닌 컴퓨터 네트워크 속 ‘가상의 공간’이다. / 367p

반면 도요타는 비슷한 시기에 우븐시티 woven city 계획을 발표했다. 이 도시의 아이디어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지하에 만들어진 운송 전용 도로망이다. 도시의 지하 1층에 자율주행 로봇들만 다니는 도로망을 만들었다. / 377p

유럽 전역에 전염병이 돌 때에도 파리에 가면 살 수 있었기에 부자들이 파리로 모여들었고, 부자에게 그림을 팔기 위해 화가가 모였고, 파리는 문화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을 만드는 자가 전 세계의 자본과 창의적인 두뇌를 흡수하는 것이다. / 378p

집값이 너무 비싸서 집을 살 엄두를 못내는 젊은이들은 대신 친구들과 돈을 모아 풀빌라에 가서 하룻밤 자면서 사진을 여러 장 찍어서 SNS에 올린다. 그렇게 공간을 소유하는 대신 소비하면서 나를 표현한다.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가상공간 안에 있는 내 SNS공간뿐이다. 가상공간에서 나의 SNS공간은 내가 경험한 것을 찍은 사진만 있으면 구축할 수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된다 내가 찍은 사진은 ‘디지털 벽돌’이 된다. / 379p

이렇듯 텔레커뮤니케이션의 발달은 현대 사회의 ‘공간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있다. 그리고 가상공간과 현실공간 모두에 ‘디지털과 융합한 사람들만이 사용 가능한 공간’이 만들어지고 있다. / 380p

건축물의 에너지 흐름과 효율성을 측정하는 것은 마치 인체의 신진 대사를 측정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렇게 건축물을 점점 유기체로 취급하고 있다.-영화 속 터미네이터가 점점 인간화되어 가는 것처럼 건축물이나 도시도 점점 유기 생명체처럼 되어 가는 추세다. 요즘 회자되는 스마트 시티란, 도시가 감각을 가지고 스스로 대응하게 하는 기술이다. / 400p

벼농사와 밀농사, 한자와 알파벳, 바둑과 체스, 절대적 가치관과 상대적 가치관, 벽과 기둥, 개미와 벌, 관계와 기하학, 고대와 현대, 실제공간과 가상공간, 인간과 기계...이들의 관계와 창조에 얽힌 비밀을 뛰어난 관찰력과 통찰력으로 재해석하다. / 표지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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