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국 _ 행복의 기원 _ 21세기북스 _ 인문 _ 인문교양]
저자 서인국 작가는 연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행복 분야 권위자인 에드 디너 Ed Diener 교수로부터 지도를 받았다. 작가는 현재 세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인용되는 행복 심리학자 중 한 명이며, 특히 행복과 문화 차가 전문 분야이다.
책의 부제는 ‘인간이 행복은 어디서 오는가.’이다. 또한 ‘생존과 번식, 행복은 진화의 산물이다.’라는 문장도 덧붙여져 있다. 사실 이 두 문장은 책의 내용을 압축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그러니까 부제로 쓰였겠지만.
책 속에서 펼쳐지는, 행복의 기원을 찾는 여정은 행복에 대해 말하는 시중의 수많은 책들과는 다르다. 작가는 행복에 대한 희망을 가슴으로 호소하는 책들은 많지만, 냉정한 분석에 바탕을 둔 ‘차가운’책은 많이 않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처럼 이 책은 흥미나 과장된 희망보다 행복의 적나라한, 사실적인 측면에 더 관심있는 독자들을 위해 쓰여졌다. 그러므로 비움이라던가 만족, 해탈 같은 시중에 널리 퍼져있는 행위를 통해 행복에 다다르는 내용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참고로 작가는 자기의 수업을 들어도 행복해지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행복은 본질적으로 감정의 경험이다. 많은 책들이 행복해지기 위해 의미를 찾으라거나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는 식으로 생각을 고칠 것을 권유하지만, 생각은 사람 안에서 만들어지는 복잡한 경험이고, 생각은 그런 특성들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이다. 그러므로 기존의 행복에 대한 접근방법은 여러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수많은 행복에 관한 책들을 읽고 따라 해도 실제로는 쉽게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런 가설을 증명한다.
인간은 주로 자기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관점은 우리의 사회와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사상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우리는 보통 인간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품고 있다고 받아들인다. 이런 생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사고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Cal Tech의 저명한 물리학자 캐롤 Carroll의 표현에 따르면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 pointless universe’에서 살고 있다. 이것을 받아들여야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단언했고, 이런 관점은 약 2천년간 흔들림 없이 유지되었다. 이런 관점과 진화론은 정면 대립된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모든 특성은 생존을 위해 특성화된 도구다. 진화론이 행복을 설명하기 더 효과적인 도구라고 선택한 작가의 관점에서 행복은 삶의 최종적인 이유도 목적도 아니고, 다만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정신적 도구일 뿐이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그래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애쓴다. 아마 앞으로도, 이 책을 읽은 이후로도 그런 노력은 지속될 것이다. 책의 내용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행복에 대한 기존의 관점과 다른 새로운 지점을 탐색해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런 작가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자신과, 또 우리와 관계를 맺고 있는 것들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가고 이해해 갈 수 있다.
[문장수집]
문학과 예술 작품은 굳이 예술가의 직접적인 경험에 기반을 두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우리는 그들의 기발한 상상력에 찬사를 보낸다. / 7p
꿀벌은 꿀을 모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도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벌도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며 이 자연 법칙의 유일한 주제는 생존이다. 꿀과 행복, 그 자체가 존재의 목적이 아니라 둘 다 생존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간단히 말해,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행복감을 느끼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이다. / 10p
저명한 심리학자인 팀 윌슨 Tim Wilson은 그래서 우리는 자신에게도 ‘이방인’같은 낯선 존재라고 했다 (Wilson, 2002).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정말 모르는 게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멍청해서가 아니고, 우리의 많은 선택과 결정은 의식을 거치지 않고 진행되기 때문이다. 의식은 아주 한정된 용량의 값비싼 자원이다. 그래서 정말 중요한 것만 선별적으로 기억하고 생각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시어머니의 생일 같은 것. / 23p
그래서 남자들은 작은 것에도 승부욕이 불탄다. 주먹 반만한 골프공을 김 부장보다 5m 더 날리려고, 연습장에 출근하며 쇠막대를 5천 번 흔드는 게 남자다. 승부욕 있는 수컷만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Baumeister, 2010). / 35p
오늘 아침에도 해가 떴다. 덕분에 꽃샘추위가 조금 누그러졌고, 식물들은 광합성을 한다. 하지만 해에게 감사 편지를 쓸 필요는 없다. 태양은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고 꽃을 피우기 위해 뜬 것이 아니다. 물리적 법칙에 따라 지구는 자전을 하고, 내가 살고 있는 동네가 태양과 마주 보는 각도로 되돌아오면 아침이 되는 것이다. / 하지만 인간의 관점에서는 우주의 모든 것이 이유와 목적이 있어 보인다. 강물은 바다를 향해 하고, 봄비는 꽃을 피우기 위해 내리는 것 같다. 이처럼 세상만사를 어떤 원인이나 목적, 계획과 결부시켜 생각하는 관점을 철학에서는 ‘목적론 teleology’ 이라고 한다. 자연의 그 어떤 것도 그냥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품고 있다는 생각, 이 목적론적 사고의 원조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다. / 45p
세상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기본적인 사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가령 산타클로스의 정체는 아빠라는 사실, 또 하나는 목적론적 사고를 극복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공과대학 Cal Tech 의 저명한 물리학자 캐롤 Carroll의 표현대로 우리는 아무런 ‘이유 없는 우주 pointless universe’에서 살고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만 세상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 47p
세상은 그 누군가의 계획가 목적에 의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인간은 더 똑똑해지기 위해 살아온 것도 아니다. 물리적 법칙과 화학 반응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우주고, 생명이고, 인간이다. 그 과정에는 어떤 목적도 이유도 없다. 인간은 수천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진 시계보다 복잡한 존재지만, 이 복잡성 자체가 초자연적인 힘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 47p
공작새 꼬리가 이 책의 관심사는 아니다. 하지만 공작새 꼬리는 진화론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생명체가 가진 모든 생김새와 습성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생존과 짝짓기를 위한 도구’라는 점이다. 너무 중요해서 다시 한 번 쓴다. 동물의 모든 특성은 생존과 번식이라는 뚜렷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다. 특히 ‘모든’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자. / 55p
공작새의 꼬리를 다시 떠올려보자. 그 꼬리는 오직 짝짓기만을 위해 설계된 매우 거추장스러운 도구다 .바로 이 공작새 꼬리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이다. 멋진 꼬리가 공작새들의 짝짓기 경쟁에서 승부를 가르듯, 멋진 마음을 가진 자들이 인간의 짝짓기 싸움에서 우위를 점한다. 공작새는 꼬리를, 인간은 마음의 능력을 펼치지만, 밀러에 의하면 판이하게 다른 이 행위의 궁극적 목적은 동일하다. 유전자를 남기기 위함이다. / 57p
피카소는 창의력을 발휘하기 위해 산 것이 아니다. 보다 진화론적인 해석은 피카소라는 한 생명체가 그의 본질적인 목적(유전자를 남기는 일)을 위해 창의력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마음의 정신적 산물들은 사실 몸의 번성을 위한 도구인 것이다. / 59p
인간을 가장 인간스럽게 만드는 되, 한마디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기 위해 뇌가 발달했다는 것이다. 인간이 인공위성을 띄우고 힉스 입자를 발견했지만, 이런 위업들은 사실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똑똑해진 뇌에서 나온 부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 86p
고통의 역할은 위협으로부터의 보호다. 뇌의 입장에서는 그 위협이 신체적인지 사회적인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뇌는 비슷한 방식으로 두 종류의 ‘고통 스위치’를 켜고 끄는 것이다. 혼자가되는 것이 생존에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연구이다. / 91p
이런 ‘사회적 영양실조’를 막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왕성한 ‘사회적 식욕’을 갖는 것이다. 식욕의 근원은 쾌감이다. 그래서 사람(특히 이성)을 만나고, 살을 비빌 때 뇌에서는 사회적 쾌감을 대량 방출한다. ‘강추’ 한다는 뜻이다. / 우리는 이런 사회적 쾌감을 예민하게 느꼈던 자들의 유전자를 지니고 산다. 그래서 지금도 사람을 절실히 찾는 것이고, 가장 강렬한 기쁨과 즐거움을 사람을 통해 느끼는 것이다. 사람과 무관에 보이는 감정들도 사실 대부분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 93p
첫째, 행복은 객관적인 삶의 조건들에 의해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 둘째, 행복의 개인차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그가 물려받은 유전적 특성,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외향성이라는 성격 특질이다. / 98p
일본이 핀란드보다 국민소득은 높지만 행복수치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낮다. / 스칸디나비아 행복의 원동력은 넘치는 자유, 타인에 대한 신뢰, 그리고 다양한 재능과 관심에 대한 존중이다(Bormans, 2010). 그들 사회는 돈이나 지위 같은 삶의 외형보다 자신에게 중요한 일상의 즐거움과 의미에 더 관심을 두고 사는 곳이다. / 107p
행복은 복권 같은 큰 사건으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라 초콜릿 같은 소소한 즐거움의 가랑비에 젖는 것이다. 살면서 인생을 뒤집을 만한 드라마틱한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혹시 생겨도 초기의 기쁨은 복잡한 장기적 후휴증들에 의해 상쇄되어 사라진다. / 113p
많은 사람들이 돈이나 출세 같은 인생의 변화를 통해 생기는 행복의 총량을 과대평가한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 행복의 ‘지속성’ 측면을 빼놓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프랑스 사상사 라 루스프코 La Rouchefecould가 400년 전에 지적한 대로 우리는 ‘상상하는 만큼 행복해지지도 불행해지지도 않는다’. / 117p
인생은 유한하다. 제한된 시간과 에너지를 어떻게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결국 인생사다. 사람들은 상당 부분을 부와 성공 같은 삶의 조건들을 갖추기 위해 쓴다. 이런 것을 소유해야 행복이 가능하리란 강한 믿음 때문에 / 119p
최근 주목받는 콜로라도 대학의 리프 반 보벤 Leaf van Boven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행복한 이들은 공연이나 여행 같은 ‘경험’을 하기 위한 지출이 많고, 불행한 이들은 옷이나 물건 같은 ‘물질’ 구매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Van Boven & Gilovic, 2003). / 145p
행복은 나를 세상에 증명하는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잣대를 가지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필요도 없고, 누구와 우위를 매길 수도 없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이 행복이다. 내가 에스프레소가 좋은 이유를 남에게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들의 허락이나 인정을 받을 필요도 없다. / 17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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