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루세는 천하를 잡으러 간다_ 미야지마 미나 _ 민경욱 옮김 _ 소미미디어 _ 소설_일본 베스트셀러]
소설의 주인공과 이름이 비슷한 그림작가님 덕분에 이 책을 선물 받았다. 가볍게 읽어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던 표지의 느낌은 책을 읽고 난 뒤로 좀 달라졌다. 제목과 만화책을 연상시키는 표지의 발랄한 느낌 덕분에 읽는 내내 즐거웠지만, 읽고 난 뒤로는 표지가 좀 달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내용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주인공 나루세는 평범하지 않은 소녀다. 2백 살까지 사는 것이 목표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하다. 이 책은 작가가 일본의 R-18 문학상에서 수상한 ‘고마웠어! 오쓰 세이부 백화점!’을 단행본으로 출간하며 나머지 다섯편의 뒷 이야기를 추가한 것이다. 지방 도시인 시가현 오쓰시가 작품의 배경이며, 이 곳은 작가가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시가현 오쓰시에 있는 오쓰 세이부 백화점은 1976년에 개점한 지역의 오래된 백화점이다. 그리고 나루세는 그 지역에 산다. 세이부 백화점은 폐점을 앞두고 있고, 그 사건과 시기를 중심으로 나루세와 그 주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녀의 이야기는 거의 모험에 가깝다.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평범하지만 그녀의 모험을 든든하게 응원하고 지원하는 좋은 친구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 에게도 세이부 백화점과 같은 장소, 나루세와 같은 친구가 있을지 모른다. 세이부 백화점은 마치 우리의 일상처럼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당연히 열려 있어야 하는 곳이며, 그 정도로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던 친근한 장소다. 나루세는 일상처럼 평범한 소녀는 아니지만 일상에서 모험을 찾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이 두 가지의 요소는 그리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며 주변과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이유를 알기 힘들지만 읽으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책이다. 그 이유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돌진하는 주인공의 모습 때문이었는지, 그 행동 속에 숨겨진 순수한 마음 때문이었는지, 묵묵히 지켜봐주는 친구 덕분이었는지, 일상을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 때문이었는지, 대리만족 때문이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하지만 천하를 잡으러 간다는 거창한 제목이 실은 가장 소박한 의미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어쨌든 나는 이 이야기를 읽으며 일상 속에 숨겨져 있는 즐거운 의미들을 좀 더 찾고 싶어졌다.
작가 미야지마 미나의 약력도 재미있는 부분이 있다. 글을 쓰던 중 24세에 누군가의 작품을 읽고 충격을 받아 글쓰기를 중단했고, 30대에 또 어떤 작품을 만나 창작열에 타오르기 시작했다는 부분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도전해보겠다는 심정으로 쓴 글이 그녀를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밝고 즐거운 작품을 써야겠다는 작가의 다짐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글들을 읽으며 나 역시 글이 쓰고 싶어졌다.
[문장수집]
나루세의 이야기는 언제나 스케일이 크다. 초등학교 졸업 문집에 쓴 장래 희망은 “2백 살까지 살겠다.”라는 것이었다. / 21p
그 순간 나루세 아카리의 역사를 끝까지 지켜보지 못하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최대한 나루세를 옆에서 지켜보기로 맹세했다. / 22p
중계가 끝나 유니폼을 벗으니 여름이 끝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교 야구 선수들도 이런 기분일까. / 48p
“여름이라 다행이었다.” 나루세가 말했다. “왜?” “어둡고 추웠으면 지금보다 더 쓸쓸했을 테니까.” /58p
무엇보다 나는 나루세 아카리 역사를 지켜볼 뿐 그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생각은 없다. / 63p
오히려 나루세가 엄마와 팀을 짜면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으나 막상 그렇게 되면 그것도 나름 마음이 복잡해질 듯하다. / 70p
이런 느낌으로 할머니가 되어서도 제제카라를 하고 있으면 최고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108p
백화점 주변에는 우리처럼 추억을 곱씹는 손님들이 남아 있었다. 어쩐지 정말 졸업식 같았다. / 154p
점의 배치만으로도 답을 알 수 있는 어린용 선 긋기 문제와는 달리 인간관계는 의외의 점과 점이 연결된다. / 167p
보통 때는 신경 쓰지 않고 지나갔는데 이곳에 세이부가 없다는 게 문득 쓸쓸하게 느껴졌다. / 179p
나루세는 한 손에 부케를 쥐고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고슈온도를 췄다. / 27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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