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철학 _ 라르스 스벤젠 _ 이세진 옮김 _ 청미 _ 교양철학 _ 철학 _ 인문]
지은이 라르스 스벤젠은 노르웨이 베르겐 대학 철학교수다. 우리 삶의 일상적 실천들을 철학적 사유의 주제와 아젠다로 확장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 세계 26개국 언어로 번역된 베스트 셀러 [지루함의 철학]을 비롯하여 [자유를 말하다] [노동이란 무엇인가] 등 다수의 저서를 발표했다. (지은이 소개 중에서)
주위에 사람이 많고 인간관계가 튼튼해 보이는데도 외로워 하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인 사람도 있다. 때론 혼자 있고 싶지만 같이 있고 싶은 이상한 양가감정에 휩싸일 때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그 주변에 대한 깊은 탐구, 그 것이 이 책의 내용이다.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하지만 외로움이라는 감정에 대해 알고 싶다면 그 어떤 책보다도 많은 것을 알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외로움과 관련된 것들은 모두 모여 있는 느낌이다. 책을 읽다 보면 ‘노르웨이의 외로움’ 이라던가 ‘외로움과 젠더’같은 제목을 가진 작은 챕터들도 만날 수 있다. 또 책은 사랑과 우정에 대해, 개인주의 사회에 대해, 자유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 모든 것들은 외로움과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이렇게 우리는 작가와 함께 외로움을 알아보는 여정을 즐기며 새로운 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보통 혼자 있는 것이 외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혼자 있는 것과 외로운 것은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 별개의 사안이다. 이런 관점은 신선하다.
외로움이라고 해서 꼭 부정적인 부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삶에 가치를 더해주는 긍정적 형태의 외로움도 있다. 그것은 고독에 가깝다. (작가는 이런 특성을 구분하기 위해 ‘외로움’이라는 단어와 ‘고독’이라는 단어를 구분한다.) 우리는 이런 긍정적인 외로움을 통해 삶의 찬란한 순간들을 맞이한 몇몇의 시인들과 철학자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지만 동시에 타인과 완벽하게 연결될 수 없다.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 어쩌면 관계속에서 우리는 모두 외롭다. 관계와 감정의 본질에 접근해보는 것은 의미가 있는 일이다. 작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사회현상의 변화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결국 스스로 노력을 기울이는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안에 머무는 법을 배움으로써 외로움을 줄일 수 있다. (208p) 이 책은 좋은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문장수집]
외로움은 수치심을 동반하기 때문에 다루기 어려운 주제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혼자 있을 때 최고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한다. / 7p
기본적으로 고립된 사람은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다. 타인들과의 연결,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경험이 우리의 인간다움을 형성한다. / 9p
우리 모두에게는 타고난 이중성 혹은 내적 반목이 있다. 그래서 타인들을 원하고 그들에게 끌리는 한편, 혼자 있고 싶어서, 타인과 거리를 두고 싶어서 타인들을 피하기도 한다. 이마누엘 칸트는 이러한 성향을 ‘비사교적 사교성’이라고 절묘하게 표현했다. 내적 반목의 양극단에는 긍정적으로 경험되는 외로움과 부정적으로 경험되는 외로움이 있다. / 15p
영어에서는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solitude이 별개의 단어로 구분되어 있다. 옛날에는 이 두 단어가 자주 호환되어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다. 그러나 나중에 가서는 좀 더 분명한 차이를 타나내기에 이르렀으니, 외로움은 부정적 감정 상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고 고독은 긍정적 감정 상태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 16p
사실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급부상하는 외로움이 아니라 너무 희박해진 고독일 것이다. / 20p
사회적 지지와 외로움은 통계적으로 모종의 관계가 있으나 필연적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외로움은 사회적 지지의 결여 같은 객관적 결정 요인보다는 주관적 경험을 바탕으로 정의해야 한다. / 24p
그러나 앞으로 보겠지만 외로움은 혼자 있음과 논리적으로 또한 경험적으로 별개다. 중요한 것은 개인이 얼마만큼 다른 이들에게 -경우에 따라서는 동물들에게- 둘러싸여 있느냐가 아니라 개인이 타인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느끼느냐다. / 세계를 경험할 때에는 모두가 혼자라고 할 수 있다. / 경험에는 항상 타인과 온전히 공유할 수 없는 개인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기 마련이다. / 24p
이렇듯 주위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는 외로움이라는 감정과 상관관계가 없다. 오히려 주위에 사람이 많은데도 극심한 외로움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혼자 있는 것과 외로운 것은 논리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완전히 별개다. / 28p
이런 유의 외로움은 주위 사람들의 수로 예측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상호 작용이 그의 연결 욕구를 충족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로 예측된다. 다시 말해, 개인이 사회적 상호 작용을 의미 있는 것으로 해석하느냐가 관건이다. 외로움은 주관적 현상이다. 인간관계가 희박하거나, 아니면 맺고 있는 인간관계가 친밀감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해서 인간관계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외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 29p
명칭만 봐도 알 수 있듯이 고질적 외로움은 당사자가 타인들과의 유대가 충분치 않다는 사실을 늘 고통스럽게 여기는 경우다. 상황적 외로움은 가까운 친구나 가족과의 사별, 연인과의 이별, 자녀의 독립 등 인생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 36p
외로움이 만들어내는 공간 속에서 우리는 타인들과의 관계를 돌아보고 우리가 그들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 39p
결국, 외로움과 우울증은 별개의 두 조건이며, 우울함 없이 외로울 수 있고 외로움 없이 우울할 수 있다. 한편, 외로움과 자살 생각 및 행동 사이에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 / 41p
외로운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자기가 처한 환경을 훨씬 더 위협적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외롭지 않은 사람들보다 사회적 상황의 위험도를 높게 보기 때문에 사회적 상황에 진입하는 방식도 다를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이들이 그토록 열망하는 애착을 맺기는 더욱더 곤란해진다. 두려움이 외로움을 가라앉히기 위해 꼭 필요한 바로 그것, 즉 인간적 접촉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 60p
외로운 사람들은 남들과 어울려 지내느라 치러야 하는 정신적 비용을 감당하지 않기로 작정한 탓에 외롭게 사는 경향이 있다. 그들은 사람 알레르기가 있다. 사람들은 그들에게 너무 심하게 영향을 준다.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 69p
외로움은 모든 사회적 공간에 깃든다. 어떤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더라도 그 경험의 어떤 면은 오로지 나에게만 속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는 완전하게 전달할 수 없다. / 107p
그렇지만 우리 자신을 아는 방식은 적어도 타자를 아는 방식과는 다르다. 타자를 피할 때는 신체적으로 거리를 두거나 정신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을 쓴다. 그러나 우리는 자기 자신을 피할 수 없다. 일이나 놀이에 전념하는 잠시 동안이라면 모를까, 언제까지나 자기 자신에게서 도망갈 수는 없다. / 108p
자유로운 개인은 ‘특별한’ 누군가가 되어야 한다. 개인주의의 등장은 사람에게 자신을 변화시키고 생성해야 한다는 새로운 책임을 안겨주었다. / 143p
외로움은 대개 슬프고 비참한 것으로 묘사되지만 우리는 이 현상을 찬양해 마지않은 시인과 철학자들을 다수 찾아볼 수 있다. 물론 그들이 찬양한 것은 외로움이라기보다는 고독에 가깝다. 외로움은 고독보다 명확하게 정의된다. 외로움의 근간에는 결핍이 있지만, 고독은 다양한 경험, 생각, 감정에 제한 없이 열려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 162p
아리스토텔레스는 최고의 인생은 관조적인 삶이라고 주장했다. 관조적인 삶은 고독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삶이다. 다른 덕은 모두 타인들과 더불어 살면서 실천해야 하지만 현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한층 독립적이며 자신의 일을 홀로 수행할 수 있다. / 166p
랠프 월도 에머슨은 오직 고독 속에서만 자기 자신을 알 수가 있고, 이 때에도 그저 타인들과의 교제에서 물러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읽기와 쓰기마저 단념하고서 별들과 더불어 혼자가 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 169p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에 따르면, 인간은 그가 고독한 정도만큼만 자기 자신일 수 있고 자유로울 수 있다. / 169p
니체에 따르면 타인과의 상호 작용은 더로 좋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결국 안도하면서 고독의 품으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 170p
고독이 통찰과 진정한 삶의 전제 조건이라는 생각은 대니얼 디포의 유명한 소설 [로빈슨 그루소] (1719) 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소설은 고독의 정화라는 힘을 다룬 교훈적 이야기라고 보아도 좋다. / 173p
풍부한 내면적 삶이 없다면 고독에 몰입하기가 힘들다. 한편,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못 견디는 사람, 고독을 힘들어하는 사람이 창조성을 계발하는 데에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다. 혼자 있는 기법을 터득한 자들만이 예술이나 과학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는 듯하다. / 18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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