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포사이스 _ 문장의 맛 _ 문학과지성사 _ 인문 _ 글쓰기 _ 수사학 _ 문장 작법 _ 독서]
작가 마크 포사이스는 언론인이자 편집인이다. [콜린스 영어사전]의 서문을 썼으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영어 단어의 어원을 다룬 [걸어다니는 어원 사전]을 비롯해 사라진 어원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The Horologicon] 등을 펴냈다.
수사학은 말을 잘하기 위한 기술이나 그 기술에 대한 공부를 의미한다. 그 어원인 그리스어 ‘[레토리케테크네’는 설득의 기술을 뜻하는 말이며, 우리는 이 말을 통해 수사학이 생겨난 이유와 발전배경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모두 39개의 장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의 장은 각각의 수사학에 대한 정의와 설명으로 구성된다. 똑 같은 글자로 시작하는 단어를 나열하거나(두운법), 두 번을 반복하거나(동어이형반복), 한가지를 말한 다음 대조시키거나, 내용을 명확히 짚지 않고 관련 내용 전체를 망라해서 표현하는(양극총칭법) 등 이 외에도 수많은 표현의 기술이 우리를 기다린다.
뭔가를 표현한다는 건 인간의 본능에 깊이 새겨져 있는 행동이다. 우리는 우리를 우리에게, 나를 나에게, 상대를 상대에게설명하고 싶어한다. 가장 효과적인 표현은 진심으로 말하고 쓰는 것이겠지만,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아름다운 표현기법을 배워서 써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당장 써먹을 순 없겠지만, 그 동안 내가 읽었던 문장이 이래서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나는 무심코 이런 수사학을 쓰고 있었구나 정도만 알아도 괜찮을 것 같다.
수사학은 본래 우리나라에서 시작된 학문이 아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영어로 된 문장을 통해 익힐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내내 함께 하는 지은이의 수다와 옮긴이의 세세한 배려 덕에 , 우리는 수사학이라는 학문에 가깝게 다가가 볼 수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미 즐겨 쓰고 있는 수사학 기법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나는 글쓰기를 좋아하지만 워낙에 이쪽 방면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인지라 당장 써먹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다 읽은 후엔 다른 곳에서 새로운 문장을 만났을 때 이건 혹시 수사학 기법의 한 종류가 아닐까 하고 으쓱거려볼 순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장수집]
근엄한 사람들은 수사를 싫어한다. 불행히도 대개 사회를 책임지고 있는 자들은 이런 근엄한 자들이다. 아름다움보다 진실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 엄숙한 바보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다. / 12p
수사학. 말을 잘하기 위한 기술이나 그 기술에 관한 공부, 수사학의 어원은 그리스어의 ‘레토리케 테크네’이다. 설득의 기술을 뜻하는 말이다. / 16p
잦은 전쟁에 지친 사람들이 어렵게 일군 평화를 유지하려는 방편으로 출현했던 수사라는 기술은, 폭력이라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특정 행동을 옆으로 슬쩍 밀어내면서 역사의 전면에 부상한다. 바로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를 통해서이다. / 17p
폭력의 대항마였던 언어가 진실을 죽임으로써 폭력을 조장하는 주범으로 밀려난 역사적 변화는 수사학의 발전 양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플라톤의 제자이면서 스승을 극복했던 아리스토텔레스가 수사학의 설득 요소를 논리와 이성을 뜻하는 로고스, 상대에 대한 인간적, 정서적 호소력인 파토스, 말하는 자의 진실성과 신뢰성이자 윤리적 기호인 에토스 세 가지 요소로 나누어 수사학을 정교하게 발전시킨 이후, 수사학은 여러 갈래로 찢어져 본령을 벗어난다. / 19p
우리가 읽고 보고 쓰는 말과 글에 스며든 수사적 표현이 그 말의 힘을 뒷받침하는 인간의 의도와 노력의 산물임을 확인하면 충분하다. / 24p
언어는 행위를 낳고 행위는 언어를 호출한다. / 24p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대조법의 기본 공식 -X는 Y이다. X가 아닌 것은 Y가 아니다- 변주에 불과하다. /50p
신은 다른 결함은 차치하고 아무튼 수사법 하나는 기막히게 구사한다. / 51p
대조 어구 하나라면 그냥 대단한 정도지만 대조 어구가 길게 나열되는 순간 경건하고 신성한 느낌을 전하기 때문이다. 이런 걸 전문용어로 대조진행progressio이라고 한다. / 52p
“신사 숙녀 여러분”, 이 표현이 바로 양극총칭법이다. 대개 대조법처럼 보이지만 다르다. 이 양극총칭법은 말하는 내용이 무엇인지 명확히 짚지 않고 관련 내용 전체를 망라해 표현하는 수사법이다. / 55p
양극총칭법 때문에 문제가 생길 위험이 있을 때마다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수 있는 표현이다. ‘포함하되 이에 한정되지 않는’이라는 문구이다. / 60p
공감각은 색깔을 냄새로, 냄새를 소리로, 소리를 맛으로 느끼는 심리적 상태를 뜻하기도 하고, 한 가지 감각을 다른 감각으로 표현하는 수사법이기도 하다. / 66p
그리고 내 경험상 행동은 피로를 낳고 음주를 부른다. 음주는 취기를 낳고 취기는 다시 숙취를 낳는다. 숙취는 고통을 낳고, 고통이 낳는 것은… / 어쨌거나 이 연쇄는 꽤 오랫동안 이어졌고,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이 연쇄가 근사하게 들리는 이유는 바로 전사반복 때문이라는 점이다. 전사반복이라는 수사법은 논리적이지 않은 것도 논리적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재주를 부린다. / 86p
연속문장은 반드시 문장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콤마(,)로 나눌 수도 있고, 세미콜론(;)으로 나눌 수도 있다; 이런 구두법에 신경을 곤두세워 짜증을 부리는 사람들이 있다 – 외로운 사람들이다 – 정작 자신은 셔츠 앞자락에 얼룩이나 묻히고 다니면서 그런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 대시(-)라는 구두점은 완전한 문장이 종속절에만 사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안됐다. 용서해주자. / 98p
영문학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이 대사는 내용이 아니라 단어를 나열한 방식 때문에 유명한 것이다. “존재할 것인가, 아니 존재할 것인가 To be or not to be” / 수사적 질문rhetorical question의 사례이기도 하다. / 115p
역설을 정의하기는 상당히 어렵지만, 보면 또 쉽게 알 수 있다. 역설의 가장 기본적인 정의는 의미가 모순되고 이치에 맞지 않는 표현이다. 수학자, 논리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시인 모두가 이 낱말을 자기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하며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역설은 매우 역설적이기 때문이다. / 202p
역설은 종교에서 가장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예수는 아브라함 이전에 내가 있었다 라고 한다. 하느님을 섬기는 일은 완전한 자유이다. 신은 중심이 어디에나 있고 둘레는 어디에도 없는 원이다. 공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기하학적으로 불가능할 수도 있지만,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현실 세계 밖에 사는 존재에 관한 생각을 불러일으켜, 현실에 사는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미치기에 가치가 있다. 그러한 작동 자체가 증거이기 때문에, 그러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그러한 생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증거가 된다. 그런 생각이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중요하다. / 208p
소크라테스는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다.”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 말을 기억하는 이유는 두 가지 생각이 마치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 그리스 식단에 죽이 많이 포함되었다는 사실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 211p
은유는 두 사물 속성이 비슷해서 연결되는 경우이지만, 환유는 두 사물이 물리적으로 관련이 있어서 연결되는 경우이다. / 243p
셰익스피어는 수사법을 사용하는 방법까지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일상의 말에서도 수사학을 연습하라.” 어쨌거나 우리도 어느 정도는 그렇게 하고 있다. / 318p
무엇보다도, 글쓰기의 목적이 가능한 한 적은 단어를 사용하여 평범하고 간단한 언어로 자신을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이라는 황량하고 어리석은 생각은 떨쳐버렸으면 한다. 이는 허구, 실없는 소리, 오류, 환상, 거짓이다. 유용성만을 위해 글을 쓰는 것은 유용성만을 위해 옷을 입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 319p
수사학적 표현들은 우리가 읽는 모든 시를 아름답게 만든다. 그런 표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저 먹고 자고 낳고 죽는 존재에 불과했을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모든 것이 영광스러울 수 있다. 할 말이 아예 없을 수는 있지만, 할 말이 있다면 적어도 잘 할 수는 있다. / 3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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