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타 나오야 _ 신카이 마코토를 말하다 _ 선정우 옮김 _ 요다 _ 예술 _ 만화 _ 애니메이션]
작가는 SF, 문예평론가로 다양한 책들을 집필해왔고, 아사히 신문에 [넷방면견문록]을 연재하고 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통해 그 안에 담긴 사상이나 표현의 의미를 탐색한다. 그 표현의 깊이는 매우 깊고, 넓으며 솔직하다. 작가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 사이에 커다란 구분선들을 그어간다.
신카이 마코토는 게임과 애니메이션, 인터넷 등을 통해 등장했고, 기존의 애니메이션 작가 및 감독과는 여러 면에서 이질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그는 그런 환경 속에서 문화영웅이 되었다. 작가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내재적 측면과 외재적 측면으로 구분한다. 내재적 측면은 신카이 마코토 개인의 사상이며, 외재적 측면은 컴퓨터나 인터넷, 소셜 미디어의 발전 등 환경적인 부분이다. 이 두 가지 측면이 만나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구성한다는 것이 작가의 주장이다.
작가는 신카이 마코토의 필모그래피를 세 시기로 구분한다. 제1기는 세카이기로 2002년 <별의 목소리>, 2004년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2007년 <초속 5센티미터>의 세 작품, 제 2기는 고전기로 2011년 <별을 쫓는 아이>, 2013년 <언어의 정원>, 2016년 <너의 이름은>의 세 작품, 제 3기는 세계기로 2019년 <날씨의 아이>, 2022년 <스즈메의 문단속>의 두 작품으로 구분했다. 책이 목차 역시 이 구분법을 따른다.
작가가 탐색하는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 속에는 그의 사상은 물론, 일본 사회의 변화, 세대 갈등, 일본의 신화, 신앙, 일본의 고전, 세계의 변화, 그가 좋아하는 작가들로부터 받은 영향 등등 다양한 것들이 담겨 있다. 누군가는 조금 과한 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겠으나, 작가의 탐색과 분석 사이에는 신카이 마코토 자신의 작품에 대한 의견이나 다른 비평가들의 의견도 꼼꼼하게 같이 실려 있어 작가가 주장하는 관점들이 힘을 얻는다.
작가의 의도, 작가의 방향성, 사용하고 있는 메타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고 해도 작품의 감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하지만 무엇이든 숨겨져 있는 것들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면 작품은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알게 된 뒤에는 다시 알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마무리처럼.
어쨌든 우리는 신카이 마코토를 통해 물리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영원’이라는 세계와 가까워질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그가 보여주는 작품들은 분명 우리를 특별하고 아름다운 ‘영원’의 세계로 초대한다.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탐색한 작가의 주장이 옳고 그른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식으로든 그런 경험과 가까워지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지만,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을 마냥 순수한 눈으로 대하고 있었다면 책을 읽어가는 도중에 약간 놀라거나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문장수집]
당신과 만나고 싶어. / 당신과 함께 있고 싶어. / 당신에게서 문자가 오지 않는 것만으로도 안절부절못하겠어. / 당신을 잃은 상실감을 견딜 수 없어. / 언제나 당신을 찾고 있어. / 당신과 연결되어 있고 싶어. / 4p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 가질 수 없다는 초조감, 잃어버린 상실감, 문자를 보내는 순간의 불안감 등 그 깊은 느낌이야말로 신카이 마코토가 누구보다 잘 묘사하는 감정의 본질이다. / 4p
그 과정에서 중시하고자 하는 바는 신카이의 사상, 즉 내재적 측면과 컴퓨터나 인터넷, 소셜 미디어의 발전 등과 같은 외재적 측면이다. / 5p
벌라주 벨러는 [시각적 인간 Der sichiare Mensch]이라는 책에서 활판 인쇄와 서적이 보급되면서 사람들이 ‘개념’의 세계를 중시하고 타인의 얼굴을 보지 않게 되었지만, 영화가 보급됨에 따라 그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 16p
벌라주 벨러는 [시각적 인간]에서 “영화는 도시 주민의 판타지와 감정생활 안에서 이전에 신화나 전설, 민화가 맡고 있던 역할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지금은 영화를 무시하고는 ‘민족 심리학’을 그릴 수 없다고 말했다. / 18p
로봇에 탑승한다는 것은 사춘기 전후 소년에게 일어나는 신체적 성장이나, 사회적 역할을 짊어져야 하는 것에 대한 당황스러움을 표현하기 위한 메타포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작품에선 로봇에 탑승하여 싸우는 인물이 여성이고, 주인공인 테라오 노보루는 지상에 남은 매우 무력한 남성으로 그려진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 33p
기술은 의식의 확대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거리를 넓히고 연결을 약하게 만들며, 고독과 외로움을 증대하지 않았냐는 말이다. / 35p
포르노 작품이 대부분 마찬가지겠지만 불쾌한 타자의 타자성이나 현실의 혹독함 등은 배제하고, 귀찮고 불쾌하며 상처받을 수 있는 측면이 제거된 연애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 51p
정교하게 그려진 구름과 빛, 바람 묘사가 관객의 다양한 마음의 움직임을 환기하고, 그것이 등장인물의 내면과도 겹친다고 하는 신카이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 54p
콘텍스트context는 ‘맥락’, 즉 의사소통을 위한 문화적 ‘상황’을 뜻한다. ‘하이콘텍스트’는 그보다 고차원적 맥락이 필요한, 언어 이외에 공유되는 문화를 바탕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가리킨다. / 54p
탑은 하늘이란 공간에 대해 무한하게 먼 시점을 의식하도록 만드는 시각적 효과를 가진다. / 56p
우리는 보통 고체를 중심으로 사고를 하니까 착각하는데, 현실 세계는 무한하게 유동하고 정지하는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 특별한 순간이나 아름다운 순간, 감동받은 순간에 사람은 그것을 ‘영원’이라고 느끼곤 한다. / 70p
이론적으로 우주가 생겨나기 전부터 우주가 사라진 이후보다도 긴 ‘영원’이라는 시간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정지된 영상처럼 잘라낸 순간이 시간의 흐름 바깥에 존재한다고 느끼며, 그것을 ‘영원’이라 표현한다. / 70p
신을 진심으로 믿던 시대에는 인생의 의미나 가치를 신이 보장해 주었다. 하지만 근대 이후로 신의 존재를 진심으로는 믿을 수 없는 시대가 찾아왔다. 그런 시대가 되었는데 몇십억 명의 인류 중 한 명일 뿐인 나에게 과연 고유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대체 가능하다는 것에 더욱 강한 허무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하지만 멜로드라마 등과 같은 이야기가 개인의 마음과 정열을 드높이 노래하고, 개인을 가장 중요한 인생의 목표로 그림으로써 우리는 ‘무의미하고 대체 가능한 개별의 생’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난 듯한 기분이 든다. 이것이 멜로드라마라는 이야기가 가진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신카이 마코토 작품, 그리고 세카이계 작품의 특징이다. / 73p
편집을 통해 두 사람의 독백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는데, 사실 그 둘은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는 결말을 던지는 충격적인 작품이다. (초속 5센티미터) 연출적인 면에서 보자면 이전 두 작품에서는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몽타주 기법을 써서 만들어냈는데, 이 작품은 그 방식을 대담하게 역이용했다고 할 수 있다. / 80p
인간에게 괴로운 일이 일어나더라도 주변은 아름답고, 자신은 그 일부이며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면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제시한다는 것이다. / 89p
“하지만 의지할 곳과 역사를 갖지 못한 것은 이 나라를 살아가는 현재의 우리에게 처음부터 설정된 파라미터, 주어진 조건이다.” 잃어버린 과거를 되돌리자며 한탄할 것이 아니라, 지금 살아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 106p
우리는 불연속적인 역사와 전통 위에 서양과 동양, 자연과 과학 등이 혼재된 상태로 살아간다. 애당초 애니메이션 자체가 미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일본의 서브컬쳐이며, 디즈니 등을 모방하면서 발전한 하이브리드 문화다. / 119p
우리는 언어라는 지극히 해상도가 거칠고 그저 개념일 뿐인 것을 구사하여 마음, 풍경, 세계와도 같은 무한하게 복잡하고 섬세한 그러데이션이 존재하는 것들을 전달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말은 항상 부족하고 모자랄 수밖에 없고, 최대한 표현하기 위해서 갖가지 문학적인 기법을 모색하고 개발해왔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저 언어만이 아니라 이모티콘이나 영상, 음성을 사용해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게 되었으나, 그럼에도 본질적인 언어의 불완전한 느낌으로 인해 우리는 언어 없어 서로 연결되던 시대를 꿈꾸게 된다. / 133p
보고 싶지 않은 것,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관리하는 구조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은 이터넷만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 안에도 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필터링’이다. / 19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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