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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철도원 삼대] 책 추천

by ianw 2024.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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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_ 황석영 _ 인터내셔널 부커상 _ 최종후보 _ 소설]
 
 
 
 
누군가에게 오늘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평범한 하루들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세상을 떠나고, 누군가는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쳤고, 누군가는 스스로 삶을 마감하기 위해 노력한 날일 것이다. 아마도 선택은 스스로의 몫일테지만, 때때로 삶은 우리를 위험한 모서리 끝까지 몰아붙인다.

 


이야기는 이진오가 농성을 하고 있는 공장의 높은 굴뚝에서 시작된다. 굴뚝의 고립된 생활은 주변의 사물을 세심하게 있게 아니라, 그가 살아온 과거에 대한 기억도 선명하게 준다. 기억 속에는 그의 할아버지 이백만과, 할아버지 이일철(한쇠), 아버지 이지산의 삶이 담겨있으며, 이백만의 부인 주안댁, 동생 이막음과 이일철의 부인 신금이, 이일철의 동생 이철, 이철의 부인 한여옥, 그리고 친구들 ,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줄줄이 따른다.

 


삼대가 흘러가는 동안 사람들의 삶이 치열해지는 이유가 되는 시대의 이야기가 빠질 없다. 가혹하게 사람들을 몰아붙였던 시대는 형제의 운명을 갈라놓고, 부부의 길도 갈랐으며, 친구들도 이리저리로 흩어지게 만들었다. 그것이 먹고 사는 곳이건, 자기가 옳다고 생각해서 걸어갔던 길이건 말이다. 그리고 결코 짧지도 길다고도 말할 없는 시간 속에서 힘을 가진 이가 누구였던 간에 사람들은 노동과 이념, 가루기에 시달렸고 타의에 의해 또는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죽여지고 죽어나갔다.

 


굴뚝 위에서 사측과 싸우고 있는 이진오는 자신과 싸우고 있는 상대를 만난 적이 없다. 거대한 적은 주인공 이진오의 가족들이 삼대를 거쳐서 삶을 버텨가는 동안 점점 실체를 꼭꼭 숨긴 뒤에 더욱 깊은 곳에 숨어버린 같다. 이전에는 나라를 빼앗아 갔다던가, 생계나 신념을 직접적으로 위협했다던가 하는 식으로 지금보다는 선명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던 같다. 이진오가 그렇게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상대와 외로운 싸움을 지속하는 동안 이진오처럼 과거의 상대들과 자신만의 방법들로 맞섰던 그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찾아와준다. 이진오가 굴뚝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 남북이 반쪽으로 갈라지기까지 철도원 삼대의 시간들도 함께 흘러간다.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려 때면, 나는 내가 주로 살았던 도시보다는 시골의 외갓집이 생각이 난다. 곳에서의 계절은 도시보다 뚜렷했고, 놀거리도 많게 느껴졌으며, 혼도 내지 않으시는 외조부들이 계셨다. 나는 오래된 시골집의 돌담틈에 끼어있던 이끼를, 장독대에서 익어가는 장들의 냄새를, 마당에 있던 평상의 감촉과, 뒤편에 있던 절구통, 공이, 호미들을 기억한다.

 


작가의 이야기는 어릴적 기억보다도 생생해서 가끔 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과거의 순간들에 대한 묘사는 너무나 정밀해서 놀라울 정도인데, 예를 들면 이일철의 아우 이이철이 인부로 다니던 철도공작장의 일터가 합금주물, 전기, 객차, 화차, 시아게, 도장, 강판 등으로 나누어져 있다는 식의 정보들이다. 거기에다 삼대의 가족들과 주변사람들의 이야기들은 너무나 촘촘하게 얽혀 있어서 정신을 차리고 읽지 않으면 몇몇은 잃어버리고 지나쳐 버릴 같았다.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도 천진난만한 어린 시절이 있었다. 사랑에 가슴을 졸이기도 하고, 조금 자라서는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시대의 환경과 마주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시간들이 있었다. 우리는 우리가 주위의 소중한 것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때때로 소중한 것들을 외면하고 살아간다는 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다. 그들은 과거의 수호자였고, 지금의 우리가 있을 있는 이유이다. 어쩌면 먼저 이승에서의 삶을 끝내고 돌아가신 몇몇 분들은, 주인공과 주인공의 가족들 주위를 떠돌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도움을 주고 지켜주던 주안댁의 영혼처럼, 어쩌면 우리 주위를 떠돌며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적이지만, 시간은 상대적이다. 우리가 살기 전의 사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얼핏 많아 보이지만 한정되어 있을 수 있고, 한 쪽으로 치우칠 가능성이 있다. 나는 이 책에서 다른 관점의 다른 시선들을 만났다.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보수 정당의 청년단과 서북청년단이 책의 내용과는 반대로 정의로운 편에 서 있는 드라마를 본 기억이 있다. 이 생소한 이름들을 접한 것은 생을 통틀어 그 때 뿐 이었으므로, 어쩌면 주인공 가족 삼대의 삶과 대립관계에 있다고도 볼 수 있는 이 이름들은 책을 읽기 전까지는 계속 좋은 편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출발점을 따지자면 사회주의를 언급할 수 밖에 없는, 노동운동의 태생적 특징으로 인해 오랜 시간 동안 ‘빨갱이’라는 불건전한 프레임에 가두어져 있는 현상은 2024년 현재에도 집요하고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한국문학의 빈 부분에 채워 넣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국 노동자들에게 헌정하겠다고. 비워져 있던 부분은 채워졌다. 그런데 왜 가슴 한구석은 아직 답답한 채로 시원해지지 않는 것일까.

 
우리가 살아내야만 하는 일상의 힘은 너무나 강력해서, 언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사람이건, 나의 일상에 또 한 사람의 일상이 포개어지고,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의 일상이 포개어지다보면 가장 아래 깔린 누군가의 절박함은 쉽게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거침없이 흘러가는 무거운 시간 앞에서 더욱 납작해져서 보이지 않게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그때도 지금도 조선의 팔할은 우리 같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금도 언제 우리를 조여올지 모르는 거대한 힘들과 싸우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는 있는 걸까. 나는, 아니 우리는 얼마쯤 걸어온 걸까. 어디쯤 도착한 걸까.

 
책을 읽어가던 어느 날 밤, 고래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바다가 너무나 넓어서 상대적으로 고래의 몸짓이 작게 느껴졌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크거나 더 외로운 존재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 나에게 그 넓고 끝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바다를 혼자 헤엄쳐 가겠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흔쾌히 그러겠다 대답할 자신이 없다. 지금도, 아마 그때였다고 하더라도.
 
 
 
 
 
[문장수집]
먼지보다 더 작아서 움직이지 않았다면 발견할 수도 없는 이런 미물도 열심히 살아간다고 그는 생각했다. 이것들에게 하루란 얼마나 긴 시간이 될까.

서류 위에서 글자로만 익힌 이름이었다. 책에 의하면 그것은 자본의 추상적 기호에 지나지 않았고, 사회가 부여한 역할을 침묵 속에서 수행하고 있었다. 그는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 그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았다. 다만 이진오와 그의 동료 노동자들과는 전혀 다른 시간 속에서 그들과 무관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며 기억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분노가 아니라 절망이었고, 그것은 일상이라는 무섭고 위대한 적에 의해서 조금씩 갉아 먹힌 결과였다. -세계란 원래가 우주처럼 무심하다. 괴괴하고 적막하고, 고요하다. 무료하고 가치 없는 일상이 그들 모두를 무너뜨렸다.

결국 조직이란 모든 약하고 외로운 개인들의 집합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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