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시미 이치로 _ 미움받을 용기 _ 전경아 옮김 _ 인플루앤셜 _ 인문 _ 심리학 _ 교양심리]
뭔가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하고 싶지 않고, 무기력한 기분이 몇 일간 지속되는 상태에서 도움을 얻을 요량으로 책을 골랐다. 모두가 알고 있는 유명한 책이다. 언젠가 읽어보리라 생각하고 있던 책이었다. 제목만 보고도 내용을 짐작하기 쉬운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철학자와 청년이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철학자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3대 거장으로 불리우는 철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청년과 이야기한다.
청년은 다소 도전적이고 거칠어 보이지만 현실에 대한 인식과 진리에 대한 탐구 그리고 과거에 대한 상처는 우리와 닮았다. 추천사에서 책을 감수한 김정운 문화심리학자는 심리학계에서 상식처럼 굳어진 프로이트의 트라우마개념에 대한 부정과, 프로이트식 원인론을 아들러식 목적론으로 뒤집었다는 부분이 이 책의 특징들 중 하나라고 말했다.
첫 번째 밤, 두 가지 정도의 이야기가 눈에 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이렇다. 청년에게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칩거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행동에 대한 원인을 청년은 트라우마라고 주장한다. 철학자는 그 상황이 친구의 과거와 관계가 없다고 말한다. 또한 그 친구에게는 ’바깥에 나갈 수 없다’라는 목적이 먼저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불안과 공포와 같은 감정을 자아낸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철학자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이다. 철학자의 친구 중에는 소설가를 꿈꾸는 친구가 있다. 그런데 그 친구는 글을 단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일이 바빠서 시간이 없기 때문이고 그러다보니 원고를 완성하지 못해서 문학상에 응모할 여력도 없다는 것이다. 철학자에 따르면 사실 그 친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남겨두고 싶은 것이라고 한다. 남의 평가를 받고 싶지도 않고, 더욱이 졸작을 써서 냈다가 낙선하게 되는 현실에 마주치고 싶지도 않으며, 시간만 있으면 할 수 있다, 환경만 허락된다면 쓸 수 있다, 나는 그런 재능이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 살고 싶은 것이라는 것이다.
철학자는 인간은 변할 수 있고, 세계는 단순하며, 누구나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우리는 객관적인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으며 어떤 목적을 따라 살고 있다고 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며, 지금까지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는 것이 아들러의 목적론이라고 이야기 한다. 보는 관점이 독특하다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두 번째 밤, 철학자는 청년에게 말했다. 자네는 대인관계를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 자신을 싫어하게 된 것이라고. 다른 사람에게 부정당하거나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그런 상황에 휩쓸리는 것보다 아예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철학자의 주장이다. 이어 인간은 사회적인 맥락속에서 비로소 개인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고독을 느끼는 데도 타인을 필요로 하며, 인간의 고민은 모두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철학자는 말했다. 나는 인간들이 조금은 더 가치가 있을 것 같은 문제로 고민한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인생의 의미라던가, 진정한 자유라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이 사람이 보는 시점은 다르다.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때 청년은 열등감을 고백한다. 철학자는 열등감은 객관적 사실이 아닌 주관적인 해석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객관적 사실을 움직이지 못하지만, 주관적 해석은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다만 열등감과 열등컴플렉스는 다르며, 열등컴플랙스는 자신의 컴플랙스를 변명으로 삼기 시작한 상태라고 한다. 또한 열등컴플렉스는 우월컴플렉스로 발전하기도 하는데, 자신이 권력자와 각별한 사이임을 어필하거나, 브랜드 제품을 과시하는 등 나와 어떤 권위를 연결시킴으로써 나 자신이 우월한 것처럼 꾸미는 것이 그것이라는 설명이다. 여기쯤까지 오니, 정신이 혼미해지기 시작한다. 글을 정리하면서도 내가 내용을 다 이해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렵게 글을 쓰는 사람들은 사실 그 자신도 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 들었는데, 조금 더 진도를 나가면 내가 그렇게 될 것 같다. 또한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공감이 간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이 장에서 정말 공감이 갔던 이야기들이다. 사적인 분노와 공적인 분노는 다르다고 한다. 공적인 분노는 개인적 이해를 넘어선 것이며, 사적인 분노는 타인을 굴복시키려는 수단과 도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누군가의 주장이 화를 낼 때까지 그치지 않는다면 그 목적은 싸우는 것 자체에 있다고 한다. 싸워서 이기고, 이겨서 자신의 힘을 증명하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같이 화를 내면 우리는 그 사람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분노란 커뮤니케이션의 한 형태이긴 하지만 우리는 분노하지 않고도 의사소통할 수 있다. 유용하고 효율적인 수단은 논리적인 대화이다. 또한 나만이 옳다고 확신해선 안된다고 한다. 나는 옳고 상대는 틀렸다고 생각한 시점에서 논쟁의 초점은 주장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 옮겨간다. 나는 옳다는 확신이 상대가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 내가 이겨야 한다는 승패를 다투는 권력투쟁이 되기 때문이다. 애초에 주장의 타당성은 승패와는 관계가 없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 사과하는 것, 이런 것들이 전부 패배는 아니라고 한다.
나는 흥분하면 졌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동안 많이 흥분해왔다. 나만이 옳다는 생각으로 나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배척하고 피했다. 종교적, 사회적, 문화적인 이유 등 소재는 다양했다. 물론 내가 이 부분을 인지했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다만 앞으로는 상황을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또한 철학자의 주장에 따르면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쓸 데 없는 곳에 낭비해왔는가. 아마 저렇게 의미없이 보내버린 시간들 때문에 나는 아들러가 주장한 인생의 과제들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모양이다. 인생의 과제란 개인이 사회적인 존재로 살고자 할 때 직면할 수 밖에 없는 인간관계들로 일의 과제, 교우의 과제, 사랑의 과제가 그것이다. 그리고 아들러는 인생의 과제를 회피하려는 사태를 인생의 거짓말이라고 규정했다. 지금의 나를 받아들이고 결과가 어떻든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갖게 하는 것, 이러한 접근 방식을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용기부여’라고 한다고 한다. 이 장에서는 마치 용기를 주기 전에 자신 스스로를 잘 돌아보라는 듯, 뜨끔뜨끔 속이 찔리는 이야기들을 해 주는 것 같다. 불편하다.
세 번째 밤의 시작은 다소 충격적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 원하는 마음을 부정한다고 한다. 타인의 기대를 따라 살면 진정한 자신을 버리고 타인의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과 타인의 과제를 분리해야 하는데, 그 것을 구분하는 방법은 선택이 가져올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군가 하는 것이다. 내가 이해하기에 분리한다는 것은 곧 섣불리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되 상대의 영역에는 발을 들이지 않는 거리, 그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청년은 철학자의 주장이 비인간적이라고 반발한다. 하지만 어디에서든 선을 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보기엔 그 것이 더 비인간적이다. 나라면 적당한 거리를 선택할 것이다. 이 장의 핵심은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루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인 것 같다. 책의 제목에 가까워지고 있다.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진정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은 내 과제이고, 나를 싫어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은 타인의 과제라고 철학자는 말한다. 혹시라도 내가 옮기고 있는 철학자의 주장이 자칫 욕망에 몸을 맡기고 충동적으로 살아가라는 느낌이라면 그건 백퍼센트 글을 쓰고 있는 내 잘못이다. 철학자는 중간중간 고삐를 늦추고 비교적 자주 흥분하는 것으로 보이는 청년에게 차분하게 충고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네 번째 밤이다. 시간이 갈 수록 오히려 나는 청년 편이다. 청년은 개인심리학(아들러 심리학의 정식명칭)이 오히려 인간을 고립시키는 학문이라고 반박한다. 철학자는 과제의 분리가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개념인 ‘공동체감각’에 이르게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 '공동체 감각'이란 아들러 심리학의 목적이자 행복한 인간관계의 중요한 지표라고 한다. 과제의 분리로부터 공동체감각으로 가는 과정에선 '수평관계'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여기에선 칭찬은 금물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입장이 나오는데, 설명을 들어보면 어렴풋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칭찬이라는 행위는 수직관계에서 가능한 행위이고, 인간관계를 수직적으로 받아들이면 상대를 아래로 보고 개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관계를 벗어나 수평관계에 근거한 상대에 대한 지원을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용기부여'라고 한다. 타인을 평가하지 않고, 칭찬하지 않으며 고맙다, 기쁘다, 도움이 되었다 라는 등의 감사나 존경의 말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한다. 칭찬을 받는 것이 목적이 되면 결국은 타인의 가치관에 맞추어 삶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 철학자의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인간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고, 타인을 친구로 간주하고, 그 곳을 자신이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통해 가치를 확인한다고 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밤, 철학자와 청년은 공동체 감각의 끝에 있는 행복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여기에선 몇가지 중요한 키워드가 등장하는데, 자기수용과 타자신뢰 그리고 타자공헌 이다. 자기수용이란 하지도 못하면서 나는 할 수 있다고 스스로 긍정하는 것과는 다른 것으로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타자신뢰란 조건을 달지 않고 사람들을 믿는것이다. 가장 이해하기 쉬운 타자공헌은 일이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타인에게 공헌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며,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통해. 스스로의 가치를 실감한다. 이 세가지는 순환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이런 키워드의 수행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다. 행복이란 바로 공헌감이다. 공헌감이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이다. 다만 인정욕구를 통해 얻은 공헌감에는 자유가 없다. 우리는 자유를 선택하면서 더불어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라고 한다. 이 부분에 대한 나의 요약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일반적인 자기계발서에서의 키워드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책 안에서는 조금더 다른 상세한 설명들이 보충되어 있다.
만일 인생이 정상에 도달하기 위한 등산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인생의 대부분을 길에서 보내게 된다고 한다. 즉 산 정상에 오르는 순간부터 진짜 인생이 시작되고,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노정은 가짜인 나가 지나온 가짜인생이 된다는 것이다. 인생이란 찰나의 연속이다.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 밖에 없다. 뭔가가 하고 싶은데 지금은 때가 아니니 그때가 되면 하자라는 방식은 인생을 뒤로 미루는 삶의 방식이다. 철학자는 인생을 뒤로 미루는 한 우리는 어디로도 가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로 청년을 설득한다. 그리고 둘은 좋은 친구가 되었다.
만만하게 보고 덤벼들었다가 아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다. 뭐 이런게 있나 싶다가도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고, 이해가 가는 듯 하다가 갑자기 다른 생각을 하느라 길을 잃은 것도 한 두번이 아니었다. 원래 철학이라는 분야를 잘 모르기도 했었고, 책을 다 읽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다만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하루는 조금 더 충실해졌고, 마음은 차분해지고 가라앉았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이전으로 돌아갈 것은 뻔한 일이지만.
청년은 마지막으로 독백하며 철학자의 집을 떠났다. ‘세계는 단순하다. 인생 또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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