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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칼의 노래] 책 리뷰

by ianw 2025.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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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_ 칼의 노래 _ 문학동네 _ 소설 _ 국내소설 _ 역사소설 _ 대하소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이면 면, 면이 모여 입체가 된다. 내가 알고 있는 어떤 교수님께서는 김훈 작가에 대하여, 한글의 예리한 각을 보여준 작가라고 말씀해 주셨다. 각이 보인다는 건 대상이 입체라는 이야기이고, 상대적으로 구체적인 모습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아마 다른 면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다른 각이라고 표현해주신 것 같다. 또한 각은 날이다. 

 

칼의 노래 책


날선 문장들이 날선 이야기를 해 준다. 책을 펼치는 순간, 정신은 날카로운 각을 이루는 면에 흡수된다. 그리고, 그 예리함에 비해 쉬이 읽히지만, 순간순간 읽기를 멈춘 뒤, 이야기를 이루고 나누는 점들에 머무르지 않을 수 없다. 잠시 머무른 순간들은 오랜만에 맞는 사유의 시간이다.

 

칼의 노래 책


모두가 알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난중일기亂中日記와 이충무공전서李忠武公全書와 선조실록宣祖實錄과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과 그 시대의 장계狀啓, 유시諭詩, 교서敎書 등의 문서들을 모두 검토하여 필요한 부분을 짜 맞추었다고 한다. 이러한 치밀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충무공의 내면이 그려진다. 

 

칼의 노래 책


작가를 통해 그려지는 충무공의 내면은 지나치다고 할 정도로 생생하고 날것이다. 개인을 향해서는 존경과 연민이, 시대를 향해서는 절망과 허무가 느껴진다. 작가는 이야기들을 모두 모아 입으로 삼킨 뒤, 몸 안에서 적절히 삭기를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토해 놓은 듯 하다. 시대의 영웅을 알아보지 못한,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시대와 임금과 조정과 모든 것들을 향해.

 

칼의 노래 책


작가의 문장은 독특했다. 내가 독특하다고 느꼈던 대표적인 문장들은 이런 것들이었다. ‘적을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적에게 있을 것 이었고, 적이 나를 이길 수 있는 조건들은 나에게 있을 것 이었다.’ , ‘크고 확실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았으므로, 헛것인지 실체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모든 헛것들은 실체의 옷을 입고, 모든 실체들은 헛것의 옷을 입고 있는 모양이었다.’ 와 같은. 같은 단어나 조사를 연속해서 쓰는 것이 문장의 격을 떨어뜨린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내게 새로운 형식을 알게 해준 표현들 이었다. 

 

칼의 노래 책


또한 작가의 글에서는 ‘양괄식 문단’(한 단락에서 했던 이야기를 마지막에 다시 하는 방식의 문단을 ‘양괄식 문단’이라고 한다. 이 외에도 문단의 구성방식은 소주제문(중심문, 중심생각)의 위치에 따라 두괄식, 미괄식, 중괄식 등으로 나누어진다. 문단이란 하나의 중심생각을 나타내는 덩어리이다.)을 자주 발견할 수 있는데, 내용을 더 강조하고 싶을 때에 쓰는 구조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형식이다. 분명 언젠가 배운 것 같긴 하다.

 

칼의 노래 책


인터넷에서 칼의 노래와 작가에 대해 잠깐 검색을 해 보았다. 작가는 글을 쓰며 고민했다고 한다. ‘꽃이 피었다’ 로 할 것인지, ‘꽃은 피었다’로 할 것인지에 대하여. 이런 미묘한 차이가 한국어의 특징인 조사와 다양한 동사의 맛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한다. 힘들겠지만 나는 조금 더 나의 글 자체를 다시 읽어보고 수정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칼의 노래 책

 


작가는 작품을 쓰는 내내 충무공에게 빙의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칼을 휘두르듯 이야기를 펼쳐보인다. 그 휘두름은 오랜 시간 수련한 검사의 오차없고 절제된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이다. 글도 이렇게 쓰면 충분히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겠다. 그리고 아마 그 무기는 그 시대의 무기력함들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장수집]


버려진 섬마다 꽃이 피었다. 꽃피는 숲에 저녁노을이 비치어, 구름처럼 부풀어 오른 섬들은 바다에 박힌 사슬을 풀고 어두워지는 수평선 너머로 흘러가는 듯 싶었다.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들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아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


내가 임금의 칼에 죽으면 적은 임금에게도 갈 것이었고 내가 적의 칼에 죽어도 적은 임금에게 갈 것이었다. 적의 칼과 임금의 칼 사이에서 바다는 아득히 넓었고 나는 몸 둘 곳 없었다.


끼니는 어김없이 돌아왔다. 지나간 모든 끼니는 닥쳐올 단 한 끼니 앞에서 무효였다. 먹은 끼니나, 먹지 못한 끼니나, 지나간 끼니는 닥쳐올 끼니를 해결할 수 없었다.


나는 견딜 수 없는 세상에서, 견딜 수 없을 만큼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내어줄 것은 목숨뿐이었으므로 나는 목숨을 내어줄 수는 없었다. 


먼 수평선 쪽에서 비스듬히 다가오는 저녁의 빛은 느슨했다. 부서지는 빛의 가루들이 넓게 펴지면서 물속으로 스몄고, 수면을 스치는 잔바람에 빛들은 수억만개의 생멸로 반짝였다.


새벽 바다의 안개 비린내 속에서 나는 때때로 죽은 여진의 몸냄새를 생각했다. 

 

 

 

 


<김훈작가의 동인문학상 수상소감>
무리를 아늑해하지 않으며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는 그 참혹한 간극 앞에서 무너져 내리면서 시대라는 이름의 거대한 적을 향하여 좌충우돌하다가 마침내 시대에 의하여 살해되는 짧은 생애의 비극적 장관을 이루었습니다.(이 부분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식민지 시절의 시인이었던 임화 선배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삶은 견딜 수 없이 절망적이고 무의미하다는 현실의 운명과, 이 무의미한 삶을 무의미한 채로 방치할 수는 없는 생명의 운명이 원고지 위에서 마주 부딪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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