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 [이 순간] 책 리뷰

[정채봉 _ 이 순간 _ 이성표 그림 _ 샘터 _ 에세이 _ 한국에세이 _ 어른들을 위한 동화]

 

이 순간 책

망각은 우리가 아픈 기억을 잊고 살아가게 해 주는 힘 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들을 잊고 살아가게 하기도 한다. 이 책을 접한 나의 경우 작은 이야기를 읽고 두 번째를 읽다보면 앞의 것을 잊어버렸다. 앞의 것이 좋지 않아서도 아니고 뒤의 것이 훨씬 좋아서도 아니다. 나는 이렇게 짧은 이야기의 연결 속에서도 길을 잃는다. 인정한다. 밖에서도 안에서도 나는 길치다. 

 

이 순간 책

앞의 것을 잊었기 때문에 이미 전체를 요약할 수 없다. 요약이 되지 않는 책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맞다. 변명이다. 책마다 각각의 적당한 속도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별로 끊어서 읽어야 하는 책도 있을 것이다. 변명을 핑계로 요약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가벼운 마음으로 요약 아닌 그저 느낌만 적어본다. 

 

이 순간 책

나는 아주 오래전 조금 다른 모습으로 이 책을 만난 적이 있다. 독서모임의 친한 동생이 빌려준 그 책의 그림작가는 이성표 작가가 아니라 김복태 작가였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다시 만난 이야기들은 그 친구의 소식처럼 여전히 하나하나 반가웠다. 그래서 하루에 하나 정도의 이야기가 좋았다. 다만 내용은 좀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이 순간 책

이 책은 글과 그림이 어우러진 책이다. 글자수는 그리 많지 않고, 그림은 단순해서 더 잘 보이지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가지고 있다. 책에 있는 글자의 양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인데 그래서 더 글 속에 머무르며 생각하기 좋았다. 

 

이 순간 책

‘이 순간’이라는 제목과 같이 이 책은 순간의 소중함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지금도 지나치고 있고, 다가오고 있는 이순간. 소중한 사람들, 관계, 만남, 그리고 삶에서 만나는 선택의 순간들과 방향 등. 잊어버리고 살지만 돌아봐야 하는 것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때로는 부드럽게, 또 때로는 다소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어떤 글들은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비유한 글 사이의 층이 너무 얇게 느껴져서 조금은 가볍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순간 책

오래전 방문했던 곳을 다시 돌아본 느낌이었다. 그 친구가 아끼는 책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덕분에 친구에게 다시 한 번 잘 읽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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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수집]

꽃이 되면 아픔이 있게 되는데 그래도 꽃이 되겠느냐? / 18p

부디 저를 꺼내어서 한 번 더 보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저를 그냥 쓰이는 것으로만 여기지 마시고 의미를 새겨 주시기를 바랍니다. / 32p

오늘도 달팽이들은 토론에 빠져서 지낸다. 그 토론 결과를 기다리느라고 다른 달팽이들조차도 아직 껍질을 벗지 못하고 있다. / 86p
이기는 사람은 행동으로 말을 증명한다. 지는 사람은 말로 행위를 변명한다. / 124p

내가 너라면 첫째는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능력을 크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솔로몬처럼 귀담아 듣는 지혜를 달라고 했을 것이고 셋째로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때그때에 충실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을 것이다. / 144p

이 사람은 그때가 언제이든지 늘 새 마음이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는 냇물처럼 날마다가 새로우며, 깊어지며, 넓어진다. / 188p

쉬시오. 마음에 짐을 잔뜩 짊어지고 사는 사람은 내일이 어두울 것이오. 새털같이 가벼운 마음으로 잠들면 기쁜 아침을 맞게 되리니…… / 그 사람은 잠 속으로 깊이 푹 빠져 들어갔다. 귀뚜라미는 잠들지 못한 다른 사람을 찾아 떠났다. / 213p

너의 평범한 오늘이 천국의 하루와 같은 것이다. 아침 이슬을 먹을 수 있고, 푸른 하늘을 날 수 있고, 꽃향기를 대할 수 있고, 꿀을 딸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날인가. 곧 건강한 하루가 천국의 하루인 것이다. 고요히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목표가 빗나가기 때문이다.

감꽃은 푸른 하늘 아래 먼데서 벌이 날아오는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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