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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원 [글자 풍경] 책 리뷰

by ianw 2025.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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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원 _ 글자 풍경 _ 을유문화사 _ 인문 _ 인문교양 _ 디자인 _ 타이포그라피]

 

 


유지원 작가는 스스로 질문하고 연구해서 답을 찾는 것을 즐기는 것 같다. 글자풍경이라는 책의 제목처럼 글자들 사이로 난 풍경을 함께 산책하며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다. 편안하다.  일전에 강연에서 뵈었던 그 모습처럼 서문부터 글이 맑다.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깊다.

 

글자풍경 책


책을 글자의 생태계처럼 조성하고 싶다는 작가의 말과 어울리는 첫 장의 내용은 알프스 북쪽과 남쪽, 각각의 환경을 닮은 어둡고 빽빽한 블랙레터와 밝고 조화로운 로만체이다. 기술의 발달로 글자들이 담기는 공간의 경계가 없어져가는 지금의 환경에서도 지역적 다양성의 가치는 양립해서 존재한다. 그리고 말을 마치기 무섭게 과거로 걸음을 옮겨 훈민정음의 서문을 읽어준다. 글자의 생태적 성격을 잘 나타내는 문헌이다. 

 

글자풍경 책


작가의 발길은 루터의 흔적들이 살아있는 비텐베르크로 향한다. 인쇄기술의 파장을 주도한 주역 루터, 그리고 그런 루터와 대척점에 서 있었던 에라스뮈스. 각각의 성향만큼이나 각각의 활자는 책장에 머무르거나 또는 거리로 뛰쳐나왔다. 인쇄기의 소음을 싣고 번져나간 구텐베르크의 불씨는 지식과 사상이 대량으로 복제되고 보급되기 시작한, 근대를 밝힌 미디어혁명이었다. 

 

이어 라이프치히에 위치한 유겐트슈틸카페에서 작가는 윌리엄모리스의 미술공예운동을, 세기 전환기의 벨 에포크를, 독일의 아르누보 유겐트슈틸을, 그리고 바우하우스를 떠올리고, 윌리엄모리스의 뒤를 이은 후계자들이었던 오토 에크만과 피터 베렌스를 만난다. 
타이포그래피의 현대는 이렇게 열렸다. 그리고 잉여의 시간에 의미를 불어넣음으로써 짧지만 아름다웠던 벨 에포크와 유겐트스틸을 어루만진다.

 

글자풍경 책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나의 세계는 내가 서 있는 공간을 중심으로 재구성된다. 작가는 여행을 통해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스스로 조정함으로써 인식을 확장한다. 존스턴체와 길산스체의 런던, 언셜체의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독일, 바이킹 룬문자의 흔적이 남아있는 스웨덴 윌란드섬, 헬베티카체의 뉴욕, 서울, 한자와 로마자가 공존하는 홍콩, 고대문자들이 서로 다투었던 터키 히에라폴리스, 알람브라 궁전이 있는 스페인 말라가, 색채의 나라 인도 등이 그 곳이다. 

 

글자풍경 책


작가의 여정은 세계를 돌아 다시 한국을 향한다. 우리를 둘러싼 한글의 풍경을 돌아보는 것은 익숙한 동네를 산책하는 것처럼 편안하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골목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곤 한번씩 발걸음을 멈추는 느낌이다. 골목에는 한글의 소리와, 뜻과, 모양과 지나온 시간과 지금과 앞으로의 기대가 담겨있다. 

 

글자풍경 책


글자체는 생명을 구하고 운명을 가른다. 디자이너로 살고 있으면서 가시성과 가독성과 판독성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던, 아니 하려고 하지도 않았던 시간에 반성한다. 물리학은 나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학문이라고 마음대로 규정했던 무지함도 반성한다. 불편한 것을 고쳐 나가는 것이 디자이너가 해야 할 일임을 잊어버리고 있던 시간도 반성한다. 경험과 몸에만 의지하고 지성에는 무심했던 자세도 반성한다.

 

글자풍경 책


물결이 잔잔해지면 부유물이 가라앉고 더 깊은 속이 보이는 것처럼, 산책의 마무리도 잔잔하고 여운은 깊었다. 좋아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관심이 없으면 들리지 않는다. 글자를 향한 작가의 시선은 깊고 넓다. 긴 시간에서 밀려난 작은 글자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아름답다. 그것은 현재의 우리를 있게 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이고, 살아남은 사물과 사람들을 아끼는 마음이다. 좋은 책을 만나는 것은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이나 즐겁다.

 

글자풍경 책


우리도 글자를 다룬다. 글자를 읽고, 글자를 쓰고, 글자를 나눈다. 책 속에서 현대와 과거를 넘나드는 글자들의 여행은 진행형이다. 우리의 여행도 진행형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좁지만 아직 가봐야할 곳들이 많이 남아있다. 만나야 할 사람들도 아직 남아있다. 

 

아주 오래전 어느 작곡가가 악보를 마무리하며 그린 그림이 오늘에 와서 책의 표지가 되었다. 그가 유명한 사람이었는지 그렇지 않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업을 마친 홀가분함에 장난스럽게 그림을 그렸던지, 나중에 자신의 악보를 볼 사람의 편의를 위해 기능적인 그림을 그렸던지도 그리 중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사람이 하는 일 중에 쓸모없는 일은 오히려 별로 없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다보면,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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