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정훈이 _ 표현의 기술 _ 생각의길 _ 독서 _ 글쓰기 _ 만화]
어떤 사람들은 좋아할 수도, 어떤 분들은 싫어할 수도 있다. 아마도 그건 작가의 정치적인 성향 때문일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생각한다. 뭐 그렇고 그런 잣대들을 떠나 나는 이 작가를 좋아한다. 유시민 작가의 문장은 참 읽기 편하다. 글에서 가능한 한 쉬운 표현으로 지식을 전달하려는 진심이 느껴진다. 유시민 작가의 글은 정치적이다. 다만 정치에 대한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세상을 더 좋게 만드는 문제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정치에 속한다.
이 책은 글을 쓰는 유시민 작가와 만화를 그리는 정훈이 작가가 같이 쓰고 그린 책이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이 가득한데다가, 글 사이사이에 만화까지 곁들여져 있어서(정훈이 작가님의 비중이 가볍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는 더욱 좋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책의 내용은 표현의 기술에 관한 것이다. 작가는 주로 글쓰기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글은 물론 그림과 그 외의 창조적 활동들에 대입해도 무리가 없다.
우리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글이나 그림 등으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남들과 공유하고 싶어하는 마음은 누구나 비슷할 것 같다.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와 관련해서 유시민 작가는 조지오웰의 자전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에 있는 글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바꾸어 전한다. 첫째는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둘째는 미학적 열정, 셋째는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고 싶다는 충동, 넷째는 정치적인 목적이다. 여기에서 정치적인 목적이란 위에서 언급한 넓은 의미의 정치다. 넷 가운데 어느 것이 중요할지는 사람마다 다르다. 작가는 스스로 글을 쓰는 이유로 미학적 열정과 정치적 목적을 꼽았다. 죽은 후에 오래 기억되고 싶다거나, 역사에 뭘 남기고 싶은 마음은 없다고 한다. 그저 살아 숨는 동안 열정을 쏟아서 멋진 글을 쓰고, 그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넓고 깊게 교감하고 싶다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고 작가는 말한다. 부러운 것이 또 하나 늘었다. 작가는 책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유시민 작가의 책을 비판적으로 읽는 것이 힘들다.
우리는 내면에 있는 생각과 감정을 글로 쓴다. 그래서 결국 글에는 우리의 내면이 묻어나게 되는데 이게 어떨 때는 참 부담이 되기도 한다. 나는 은근히 사람들의 반응과 시선에 신경을 쓰는 부류다. 그러면서도 쉽게 사람에게 신뢰를 보내지는 않는데, 그건 나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글쓰는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자기답게 글을 쓸 수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 무엇이 내 것이고 뭐가 남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틀에 박힌, 진부한, 상투적인 글을 쓰게 된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또한 진부하지 않은 글을 쓰기 위해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 중 하나는 종교와 사상에 대한 것이다.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훌륭한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나 사상이 오히려 사람의 도덕적 미학적 직관(맹자와 칸트는 일찍이 인간이 도덕적 미학적 직관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했습니다.)을 질식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수많은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지 않아도 우리는 가까운 주위에서 이런 사례들을 접할 수 있다. 코로나 사태는 일부 종교들의 비합리적이고 비사회적인 맨얼굴을 드러나게 했다. 작가의 글은 이런 현상에 대한 흥미로운 해석으로 연결되는데, 사람들이 고정관념, 선입견, 이념적 교조에 지배당하는 것은 그 사람이 좋아서 그러는게 아니라, 자기 머리로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라는 주장이다. 그럴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무책임하고 게으른 사람으로 보여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는 조금 더 조심할 생각이다. 더 잘 쓰고, 더 잘 그리고 싶기 때문에. 그래서, 독창적이고, 기발하고, 창의적이며, 흥미롭고, 반전이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이 책에는 유시민 작가가 쓴 ‘글쓰기 특강’에 나오는 내용과 중복되는 내용이 있다. 그 내용은 취향고백과 주장의 구분에 관한 것으로, 우리는 이 두가지를 구분해야 할 필요가 있고 주장은 반드시 논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복된다는 건 그만큼 작가의 기준에서 중요한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악플과도 연관이 된다. 우리는 존중해야 마땅한 비판과 악플도 가려낼 필요가 있는데 이 기준 역시 일정한 논리와 근거가 있느냐 없느냐를 살펴봄으로써 구분할 수 있다. 대응할지 말지, 생각해볼지 무시할지,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스스로에게 쏟아지는 악플의 파도에 ‘치열한 무플’로 대응한다고 하는데, 나에겐 꽤 괜찮은 대응방법으로 보인다. 쓸 데 없는 감정소모를 줄일 수 있고, 남루한 내 생각들을 다른 사람앞에 드러내지 않아도 되며, 이성에 앞서는 감정을 들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군가 다른사람과 논쟁을 벌이는 시간보다는 나 스스로에게 몰입하는 시간을 더 좋아한다. (물론 좋은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다.) 주로 내가 스스로에게 몰입하는 시간들은 뭔가를 디자인하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세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제가 책의 내용을 정리하려는 목적으로 책을 읽을 경우 좀처럼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작가가 하는 것처럼 문장을 읽어 내려가다가 잠시 책을 덮어놓고 어떤 나만의 감정에 젖는게 어렵다. 나에게 몰입이 중요한 이유는 우선 그 자체가 즐거운 경험이기 때문이고, 그렇게 몰입의 시간을 마치고 나면 그래도 오늘은 뭔가 한것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뭔가 안도가 되고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하루의 많은 시간을 촘촘한 몰입으로 채우고 싶다. 그래서 생각과 감정이 풍성해지고 삶이 넉넉해지는 기분을 맛보고 싶다.
한 권의 책을 만나는 것은 한 명의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것과도 비슷한 것 같다. 어떤 사람과는 말이 잘 통하고, 어떤 책은 잘 읽힌다. 작가의 이야기처럼 우리는 세상의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될 순 없다.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기 위해 잘 맞고, 잘 통하는, 사랑스러운 사람들과 책들과 교감해야 한다. 좋은 친구와 책은 부정적 감정의 무게를 견디게도 해 준다. 더군다나 책을 읽은 뒤 글을 쓰는 과정은 각자의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주며, 자신과 타인을, 사회와 세상을, 관계와 삶의 의미를 더 깊고 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 살러 온 존재입니다. 사람마다 태어난 특성과 환경은 다르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의미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노력하고 분투하고 즐기면서, 각자 자기답게 살아가기를, 그런 삶을 누릴 기회가 여러분 모두에게 찾아들기를, 그리고 살아가면서 하는 생각과 느낌과 감정을 글로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아가기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유시민-
[문장수집]
어떤 형식으로든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이 전부인 건 아닙니다. 좋은 문장으로 표현한 생각과 감정이 훌륭해야 합니다. 표현할 가치가 있는 지식, 정보, 논리, 감정, 생각을 내면에 쌓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문장 기술을 배워도 글이 늘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답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면, 무엇이 내 것이고 뭐가 남의 것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틀에 박힌, 진부한, 상투적인 표현만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늘 이렇게 생각하면서 글을 씁니다. “내 생각과 감정을 나다운 시각과 색깔로 써야 한다. 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진부하고 상투적인 생각과 표현에서 멀어져야 한다.”
첫째는 자기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입니다. 과학자나 정치인들과 마찬가지로 작가도 똑똑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죽은 뒤에도 사람들이 잘난 인물로 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라고요. 둘째는 의미와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미학적 열정’입니다. 자신이 보고 느낀 세상의 아름다움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하며,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험을 글에 담아 타인과 나누려고 한다는 것이죠. 셋째는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충동입니다. 자기가 발견한 사실과 진실을 기록해 후세에 남기려고 하는 욕구는 영원한 것에 대한 갈망과 관계가 있습니다. 넷째는 정치적인 목적입니다. 여기서 정치적인 목적이란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문제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입니다.
오웰과 비교하면 저는 아주 평범한 속물입니다. 세속적 성공을 인간적 실패로 여기지 않습니다. 정치적 목적과 예술적 성취, 둘 다를 이루고 싶어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사람에게 복수의 페르소나(인격)가 있다고 하더군요. 감정이 크게 흔들리면 이성이 힘을 쓰지 못한다고도 하고요. 인간이 원래 그런 존재랍니다. 그러니 자신이든 타인이든, 사람에 대해서 지나친 신뢰를 보내지는 않는 게 현명하겠지요.
글 쓰는 사람들을 위협하는 것은 욕망만이 아닙니다. 훌륭한 이상을 추구하는 종교와 사상도 조심해야 합니다. 이념과 종교의 교조가 도덕적 미학적 직관을 질식시키기도 하거든요.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역사 사례가 있습니다. - 이념은 세상을 바라보는 데 유용한 인식의 틀이지만, 사람의 생각을 속박하는 족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의 모든 일에 대해서 상투적인 생각과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고정관념, 선입견, 이념적 교조에 지배당하는 것이죠. 좋아서 그러는게 아닙니다. 자기 머리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니까 그렇게 하는 겁니다.
악플은 그 대상이 된 사람의 잘못이 아니며 그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도 아닙니다. 악플을 쓴 사람의 내면이 얼마나 남루하며 황폐한지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에요. 남의 문제를 가지고 왜 내가 고민합니까?
저는 타인에 대하 기대 수준을 바닥으로 내리는 것을 현명한 처세술로 여깁니다.
누구나 선플만 쓰지는 않으며 세상은 내 생각을 온전히 품어주지 않습니다. 논밭에는 잡초가 생깁니다. 아무리 부지런한 농부도 막을 수 없습니다. 악플도 내 맘속에서 둥지를 틀면 내쫓기가 어렵습니다. 내가 나를 가꾸지 않아서 잡초만 무성하게 키우는 꼴이지요! 우리는 남들이 주는 것을 안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물건은 주고 받을 때 요리조리 살펴서 받는데 마음은 덥석 받고 맙니다. 마음도 살펴서 받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일정한 근거와 논리를 갖추고 있다면 표현이 거칠어도 정상적인 의사표시로 인정해야 합니다.
“내 생각은 절대적으로 옳다.”누군가 이렇게 주장한다면 어떨까요? 무지하고 교만한 사람이라고 할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절대 진리를 알지 못합니다. 다만 알려고 노력할 뿐이지요.-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니까 우리가 하는 생각도 당연히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류를 말할 자유를 존중합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인격체이며 독립해서 활동하는 정보 처리 주체입니다. 이해관계, 경험, 학습, 개인적 성향에 따라 똑같은 상황을 다르게 해석하며 똑같은 정보도 다르게 처리합니다. 이미 지니고 있는 인식과 가치관에 잘 들어맞는 정보는 쉽게 수용하지만 날카롭게 충돌하는 정보는 배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 뇌에는 ‘폐쇄적 자기 강화 메커니즘’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이미 믿고 있는 것과 다른 사실, 다른 이론, 다른 해석은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취향을 가지고 논쟁하면 더 곤란합니다. 오로지 감정만 상할 뿐이지요. 무언가를 주장하고 싶다면 받드시 근거와 논리를 제시해야 합니다. 만약 상대방이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주장만 하면 논쟁을 중단하는 게 현명합니다.
화를 내는 것은 논리적으로 흔들린다는 증거입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데 의미를 두고 글을 쓰면, 남들이 알아줘도 좋고 몰라줘도 괜찮습니다. 예술의 역사에는 당대의 대중이 어떤 예술가의 훌륭함을 알아보지 못한 사례가 흔하니까요.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예술가의 자부심으로 견딜 수 있습니다.
어떤 사회악이 생기면 그 원인을 나쁜 사람에게서 찾는 경우가 많은데, 모든 악이 악한 사람 때문에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소수의 사악함보다 다수의 어리석음이 사회악을 부르는 때가 더 많습니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좋게 바꾸려면 우리 자신이 날마다 조금씩이라도 덜 어리석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읽고, 생각하고, 토론하고, 글을 씁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름을 묻는 게 아닙니다. ‘나’라는 철학적 자아의 특성이 무엇인가 묻는 겁니다. 인간 일반의 본성 위에 그 어떤 ‘자기만의 것’을 세웠는지 말하라는 것이죠.-내가 누구인지 말하려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인지해야 해요.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태도, 사회를 보는 관점, 타인과 관계를 맺는 방식, 내게 중요한 욕망과 그것을 실현하려고 선택한 방법,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이 어떠하며 그게 남들과 얼마나 다른지 알아야 합니다. 이걸 모르면 남을 흉내 내는 글 밖에 쓰지 못해요.
사람은 저마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철학적 주체이지만 생물학적으로는 군집을 이루이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동물입니다.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게 우리의 본성이며 운명입니다.
텍스트는 넓은 의미에서 보면 ‘해석이 필요한 대상’ 또는 ‘해석이 가능한 대상’을 말합니다. 글, 음악, 그림, 춤, 사진, 사건 등 어떤 메시지를 담은 것은 모두 텍스트가 될 수 있지요. 콘텍스트 context는 텍스트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환경, 배경, 조건, 사실, 관계, 맥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독자가 감정을 이입할 수 있도록 쓰려면 독자의 눈으로 자신이 쓴 글을 살펴야 한다.
지식을 배우는 데 집착하지 말고 몰입의 순간을 즐기는 데 집중한다면 굳이 빠르게 많이 읽으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몇 권을 읽든, 마음을 열고 책 속으로 들어가 글쓴이가 전해주는 생각과 감정을 그대로 느끼는 게 중요합니다. 생각과 감정이 풍성해지고 삶이 넉넉해지는 기분을 맛보게 될 겁니다. 이것이 바로 독서의 맛이예요.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으려는 것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다 사귀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의미도 없고요. 행복하게 살려면 나하고 잘 맞는 사람, 통하는 사람, 사랑하는 사람과 교감해야 합니다. 마지 않는 사람과 다투면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우리 인생이 너무 짧으니까요.
책은 독자가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마을 들려주고 볼 준비가 된 것만을 보여줍니다. 내가 듣고 보는 것이 그 책이 가진 전부는 아니라는 말이지요.
책은 간접경험을 통해 무엇인가 배우고 깨닫고 느낄 목적으로만 읽는 게 아닙니다. 저는 외롭고 힘들고 슬플 때 그런 부정적 감정의 무게를 견디려고 책을 읽기도 합니다.
요약을 하려면 먼저 발췌를 해야 합니다. 발췌는 텍스트에서 중요한 부분을 골라내는 것입니다. 요약은 그것을 원래 텍스트와는 다른 언어로 압축하는 작업이고요. 발췌가 물리적 처리법이라면 요약은 화학적 처리법이예요.
발췌 요약을 멋지게 하려면 텍스트만 볼 게 아니라 콘텍스트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어떤 대목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판단은 텍스트 해석에 달려 있고, 텍스트 해석은 어떤 콘텍스트에 비추어보느냐에 따라 결정되니까요.
텍스트를 발췌 요약할 때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고 상상하면서 작업하면 좋습니다. 그거 어떤 책이야? 무슨 글이야? 주장하는 바가 뭔데? 그런 질문을 한 사람에게 자신이 읽은 텍스트를 쉽고 간단하고 명확하게 이야기해 준다고 생각하면서 쓰는 겁니다. 발췌 요약훈련은 혼자보다 여럿이 하는 게 좋습니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다양한 시각을 만날 수 있고 남들이 내가 쓴 요약을 쉽고 분명하게 이해하는지 점검하기에도 편리하거든요.
논문을 쓸 때 다음 절차를 활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1. 주제를 명확한 형태의 질문으로 만든다. 2.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논문 주제와 관련한 기존의 연구 결과를 살펴보고 그 현황과 성과와 한계를 요약 정리한다. 3. 기존 연구 결과를 반박, 보완, 수정, 극복하는 데 필요한 사실, 가설, 이론, 해석을 제시하고 서술한다. 4. 논문에 담은 연구 결과의 학술적 의미와 가치를 정리한다.
논문이나 리포트가 단지 학점을 따고 학위를 얻는 수단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런 것을 쓰면서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능력을 키웁니다. 읽고, 보고, 생각하고, 글을 쓰면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사회와 세상을, 관계와 삶의 의미를 더 깊고 넓게 이해하게 됩니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시도의 저변에는 자유주의가 아니라 개인을 국가에 복속시키려는 전체주의사상이 깔려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말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지만사실은 교육을 통해서 ‘자발적으로 국가를 위해 살아가는 국민을 양성’하려는 전체주의사상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어서 그 토론에 나갔던 겁니다. 전체주의자와 싸우기 위해, 저는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시장을 옹호한 밀에게 의지했습니다.
저는 서평이라면 두 가지를 반드시 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에 대한 ‘객관적 정보’와 비평하는 사람의 ‘주관적 해석’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글을 잘 쓰려면 문장 쓰는 기술, 글로 표현할 정보, 지식, 논리, 생각, 감정 등의 내용, 그리고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어느 것이 제일 중요할까요? 독자의 감정 이입을 끌어내는 능력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글 쓰는 기술은 외모입니다. 롱다리, 브이라인, 에스라인, 빨래판 복군 같은 것이죠. 내용은 사람이 가진 것이예요. 체력, 돈, 재능, 지식입니다. 감정 이입 능력은 성격, 마음씨, 인생관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은 흔히 외모를 부러워하고 돈과 지식을 선망하지만 행복한 삶을 사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격과 마음씨와 인생관입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을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 살러 온 존재입니다. 사람마다 태어난 특성과 환경은 다르지만 모두가 최선을 다해서 의미 있고 행복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노력하고 분투하고 즐기면서, 각자 자기답게 살아가기를, 그런 삶을 누릴 기회가 여러분 모두에게 찾아들기를, 그리고 살아가면서 하는 생각과 느낌과 감정을 글로 자유롭게 표현하며 살아가기를 아버지의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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