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와 이토 _ 달팽이 식당 _ 권남희 옮김 _ 알에이치코리아 _ 소설 _ 일본소설]

겁이 나고,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막상 시작해보면 조금씩 해 나갈 수 있게 된다. 삶의 어두운 구간에서는 두려움도 망설임도 심해지기 마련이다. 그럴 때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이 뭔가를 다시 시작해보는 것이다.


연인, 목소리, 모든 것을 잃고 도시를 떠난 주인공은 고향에서 식당을 차린다. 식당의 이름은 ‘달팽이 식당’. 그녀의 요리를 먹은 사람들에게는 우연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좋은 일들이 일어난다. 은둔하는 할머니, 아직 사귀기 전인 연인, 이상한 아저씨, 토끼를 데리고 온 소녀, 치매로 오늘 요양원에 입소하는 할아버지와 가족, 사랑의 도피를 한 남자 커플, 다양한 손님들이 이 식당을 찾는다.

오가와 이토의 다른 작품 ‘츠바키 문구점’에서도 주인공은 일을 시작하기 전 대화를 통해 가능한 한 상대를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다. 손님과의 면담을 통해 상대에 대한 정보를 얻은 후 어울리는 메뉴를 생각한다. 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은 어쩌면 이해할 수 없는 상대에 대한 공감과 배려일지 모른다.

달팽이는 후진하지 않는다. 움직이는 방향은 항상 앞이다. 달팽이는 자신의 집을 스스로 등에 지고 다니며, 아주 천천히 느릿느릿 움직인다. 이 식당의 이름은 ‘달팽이 식당’이다.

뭔가가 끝나야만 새로운 것이 시작된다. 비워야 비로소 채울 수 있다. 주인공은 도망친 곳에서 새로운 삶과 만나게 된다. 도망친 곳은 원래 그녀의 고향이었다.

우리는 항상 어딘가로 향한다. 어떤 때는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시간은 항상 우리를 밀어내기 때문에 우리는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다. 요리를 하는 것 역시 어딘가로 향하는 행위다. 우리는 어딘가를 향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행위에 스스로 의미를 부여할 때, 진심을 담아낼 때, 온전히 그 순간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문장수집]
황급히 돌아보면서 스쳐 지나간 버스를 눈으로 쫓았다. 하지만 버스 두 대는 맹렬한 속도로 각기 ‘과거’와 ‘미래’를 향해 멀어질 뿐이었고, 창에는 다시 물방울이 가득 찼다. / 19p
또 만약 이 산골짜기 조용한 마을에서 요리를 만드는 일이 정말 실현된다면, 나는 이번에야말로 이 땅에 제대로 발붙이고 살 수 있다. / 40p
팔을 뻗쳐 손가락 끝으로 더듬어 보니, 열매는 양팔로 양다리를 안고 잔뜩 웅크린 아이의 등처럼 단단하다. / 45p
작은 창틀이 만들어낸 정사각형 액자에 별 하나가 조그맣게 빛나고 있었다. 재채기 한 번 하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희미한 빛이었다. / 59p
그 중에서 웃겼던 점이라면 식사량에 관한 메모에 “너무 많이 먹으면 ‘돼지’가 되니 양은 적게”라고 쓰여 있었던 것. 엄마에게 엘메스는 집에서 키우는 돼지 이상의 존재라는 뜻이리라. / 61p
그 작은 공간을 책가방처럼 등에 메고, 나는 지금부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 나와 식당은 일심동체. / 일단 껍데기 속에 들어가 버리면 극돗은 내게 ‘안주安住의 땅’이다. / 75p
나는 얼른 시운전을 겸해 달팽이호를 타고 조용한 산골 마을을 한 바퀴 일주하는 여행을 떠났다. / 78p
마치 지구를 거대한 꿀단지에 담가 놓은 것 같았다. / 96p
그러나 사토루군 앞에서는 남의 집에서 데려온 고양이처럼 얌전했다. / 116p
호박을 고른 것은 사토루 군이 감고 있던 산뜻한 겨자색 목도리가 예뻐서, 당근은 창 너머에 펼쳐진 노을 색을 표현하고 싶어서, 마지막으로 사과를 추가한 이유는 모모양의 귀여운 뺨이 빨간 사과를 닮아서였다. / 118p
그런 식으로 내 목소리도 말라비틀어져서, 핀셋으로 살짝 집어 돌리면 몸에서 툭 떨어져 영원히 제자리를 잃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173p
그곳은 보이는 전부가 눈과 얼음의 세계였다. 하늘은 활짝 개고, 구름은 유유히 하늘 바다를 헤엄쳤다. / 176p
“초조하거나 슬픈 마음으로 만든 요리는 꼭 맛과 모양에 나타난단다. 음식을 만들 때는 항상 좋은 생각만 하면서, 밝고 평온한 마음으로 부엌에 서야 해.” / 205p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 목소리는 내 어깨에도 얇고 부드러운 베일을 살짝 걸쳐 주었다. / 209p
요리를 대하는 링고의 세심함이 소설을 대하는 오가와 이토 씨의 마음가짐이지 않을까. / 권남희 / 30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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