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다 미리 _ 5년 전에 잊어버린 것 _ 양윤옥 옮김 _ 소미미디어 _ 소설 _ 일본소설]
좋은 책을 읽고 나면 기록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경우, 특히 책 속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그런 생각을 실행으로 옮기게 된다. 이번 문장은 책의 내용에서가 아니라, 작가의 인터뷰에서 발견했다. “등장인물은 모두 나와 비슷하지 않고, 또 한편으로는 나와 정말 비슷하기도 합니다.” 라고 마스다 미리는 인터뷰에서 밝혔다. 현명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작가답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장, “어떻게 해봐도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떠안고 있지만 순간순간 행복의 존재 또한 믿고 있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이번 책은 이 두 문장으로 인해 글로 남겨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어찌 보면 지나치게 차분하고, 심지어는 밋밋하다고 느껴지는 이전 작품들과는 차이가 있는 글들이다. 야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야하다고 느껴지지 않는 것은 그래도 마스다 미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이 모두 여자인, 총 10개의 단편에는 우리가 몇 년전 쯤에 잊어버린 것들, 잊고 살았던 것들, 나도 모르게 잊어버렸을 것 같은 것들이 등장한다. 어떤 것들은 밝히기 조금 부끄러운 것들도 있지만 역시 마스다 미리답게 담담하고 솔직하다. 앞의 인터뷰에서의 문장에서처럼 작가와 등장인물의 관계는 일부러 조정해놓은 것처럼 아주 미세하고 정밀하다.
나는 이 작가가 너무 진지하지 않아서 좋다. 아니면 진지하긴 한데 무거운 문제들도 조금 가볍게 보이게 하는 능력이 있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그 문제들에 대해 다시 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이건 정말 부러운 능력이다.
마스다 미리의 책들은 모두 작고 무게도 가벼운 축에 든다. 지하철을 타고 몇 번 왔다갔다 하면서 가볍게 읽다보면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데 된다. 소설은 이 책이 처음이지만, 만화책은 꽤 많다. 벌써 이 작가의 책을 몇 권째 읽는 지 모르겠다.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조금 두껍고 어려운 내용의 책들 사이에 읽으면 좋다. 머리도 가볍게 해주는 것 같고, 뭔가 책을 읽어가는 완급을 조절해주는 느낌이다. 세상의 문제들에도 이런 가벼운 해결책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문장수집]
“허리를 좀더 낮춰 봐요.” 그렇게 말했을 때, 뭔가 녹아내리는 듯한 달콤한 자극이 있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시선이 지금 내 몸을 샅샅이 훑고 있는 것이다. 허리도 허벅지도, 부드러운 가슴도.
발효 전의 희고 말랑말랑한 빵 반죽은 그의 손끝이 만져주는 대로 온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많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무슨 팀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그저 각자 따로따로 뒤쳐진 채 살고 있다.
어찌됐건 나는 창가 자리에 죽치고 앉아 연못이나 바라보며 내 인생을 깎아낼 뿐이다.
나는 일단 딸의 생각도 물어보고 싶었다. 내 부모님이 그렇게 해준 것처럼 마나의 생각도 물어본 다음에 결정하고 싶었다. 나쁜 마음에서 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알지만, 이 세상은 나쁜 마음에서 한 일이 아니라는 걸로 다 해결될 만큼 간단하게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정말로 사라져버리는 건 아니야. 땅 밑에서 씩씩하게 살아있어. 쌍둥이 바람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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