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국종 [골든아워] 책 리뷰

by ianw 2024. 12. 30.
반응형




[이국종 _ 골든아워 _ 흐름출판 _ 에세이 _ 중증외상센터 기록 _ 의사 에세이]

 

골든아워 책


누군가의 봄은 나의 봄과 같지 않다. 저자 이국종 교수님에게 봄은 그저 환자들이 늘어나는 계절이다. 스승의 날 제자로부터 받은 카네이션은 핏빛을 머금은 식물이다. 항상 생과 사의 경계에서 살아가는 분에게 있어서 봄은 그런 계절이고 카네이션은 그런 꽃이다. 이 책은 2002년부터 2013년까지 의사 이국종 교수님이 중증외상센터에서 있었던 일들을 기록한 책이다. 책에는 우리가 알만한 굵직한 사건들도 등장하지만 작은 이야기들도 결코 사소하지 않다.

 

골든아워 책


이 책을 ‘이순신 장군님께서 직접 쓴 칼의 노래’라고 표현하는 어떤 작가를 본 기억이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충분히 이해가 된다. 교수님께서 직접 서문에서도 드러냈듯 김훈 작가의 결은 곳곳에서 느껴진다. 어울린다. 칼의 노래에서 접했던 생사를 건 현장이, 부서진 뼈와 짓이겨진 살과 핏물에 싸인 일상이, 죽음이 항상 곁에 머무른다는 점들이 같다. 인생의 무의미함, 체제의 무의미함, 체계의 무의미함 속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사람들이 같다.

 

골든아워 책


나는 나 하나 살기 급급하며, 게으르고, 어려움 앞에서는 쉽게 회피하며, 좁고 너그럽지 못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왔다. 속에 숨겨진 의미를 찾기 보다는 겉으로 보이는 반짝거림에 끌렸고, 그 방향으로 걸어왔다. 그에 비해 어떤 사람들은 날 때부터 신으로부터 어떤 소명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신은 그들에게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의미있게 만들어줄 소임을 부여하고, 사명감을 추가하여 세상으로 내려보낸다. 이 책에서는 그런 사람과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골든아워 책


대한민국의 환자 이송시간은 평균 4시간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의 전투지역과 다르지 않다. 이 문장 하나로도 우리는 대한민국의 의료현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주위를 둘러볼 필요가 있고, 우리를 둘러싼 시스템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특별히 거창한 예를 들지 않아도 짐작과 이해는 가능하다. 식탁위에 올라오는 멸치 한 마리, 배추 한 조각도 우리가 직접 채집한 것이 아니다.

 

골든아워 책


각자의 생을 저울로 달아 무게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생각은 해 봐야 할 것 같다. 우리는 의미있는 일을 하며 살고 있는걸까. 우리 스스로가 정하고 걸어가야 하는 길에 배당된 무게는 얼마만큼일까.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선명한 남색 종이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은색으로 새겨져 있다. 비록 책의 구석 한 켠, 가벼운 종이에 깨알같은 크기로 인쇄된 이름들이지만 그 무게는 역사적 장소에 새워져 있는 거대한 자연석에 조각된 어떤 유명한 이름들보다 무겁고 아름답다.

 

골든아워 책


책을 덮고 남는 것은 김훈 작가님의 칼의 노래를 읽고 남은 것과 같다. 무기력하고 무의미한 시대와 복지부동한 관료들에 대한 분노와 그런 것들에 둘러싸인채 외롭게 칼을 휘두르는 한 분과 그 주위에서 같이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


다만 하루를 시작할 때 짬을 내어 몇 부분을 읽으면 새로운 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골든아워 책

 

 

 

 


[문장수집]


나는 우리가 여태껏 해온 일들이 ‘똥물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도, 까치발로 서서 손으로는 끝까지 하늘을 가리킨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곧 잠겨버릴 것이고, 누가 무엇을 가리켰는지는 알 수 없게 될 것이다.

외과의사로 살아가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외과의사로서의 나의 한계를 명백히 느꼈다.

일을 그만두기에 가장 적합한 때를 살피는 나에게 제 목숨을 맡긴 남자를 보며 미안해졌다.

죽다 살아난 어린 생명이 자라서 사회의 한 축이 되어주리라는 생각을 할 때 나는 가슴이 부풀었다. 어쩌면 그것이 내 인생에서 유일하게 가질 수 있는 의미일 거라고 생각했다.

환자는 결국 아침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날은 지나치게 밝고 눈부셨다. 늘 죽음과 마주하면서도 난 그 개별적인 죽음들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는 답이 당장 보이지 않아도 정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가면 된다고 했다. 어쩌면 해답을 한 번에 구하려는 것은 우매한 노력일 것이다.

의료계에도 줄서기와 편 가르기는 만연했고 의료계여서 더 깊었다. 신물이 났다. 병원 안팎으로 나를 향해 겨눈 무수히 많은 칼들이 날을 바짝 세우고 희번덕거렸다. 나는 한낱 지방 병원의 외상외과 의사였다. 나의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칼을 겨누게 하는지 좀처럼 헤어려지지가 않았고, 헤아리고 싶지도 않았다. 사는 것의 지리멸렬(이리저리 흩어져 갈피를 잡을 수 없음)함이 지겹고 지난(지극히 어려움)했다. 

나는 공장이나 공사장에서 구르고 떨어져 짓이겨진 채 실려 와 병원비에 속수무책으로 주저앉는 환자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구조적인 문제였다. 이곳마저 대한민국 여느 분야와 다르지 않아, 원칙은 무너지고 힘의 논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 속에서 우리의 자리는 존재의 지속 여부를 가늠할 수 없는 비루한 모퉁이 한쪽일 뿐이다. 불합리를 삼켜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여서 우리는 스스로를 죽음 가까이에 두는 일이 많았다.


 

 


#골든아워 책 추천 #골든아워 에세이 #골든아워 중증외상센터 기록 #골든아워 의사 에세이 #에세이 추천 #중증외상센터 기록 추천 #의사 에세이 추천 #요즘 읽을 만한 에세이 #요즘 읽을 만한 의사 에세이 #이국종 교수 골든아워

 

 

 

 

 

반응형